교사 치유모임을 끝내며

by 교교

올해 교사치유모임을 시작했다. 동료 선생님이 내게 모임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일 년간 우리는 주 1회씩 꾸준히 만났다. 모임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일 년간 꾸준히 만나는 모임을 직접 진행해 본 적은 처음이다.


나는 매년 교권침해나 개인적인 이유로 힘들어하는 동료교사들을 지켜봤다. 모임에 참가한 모든 선생님이 힘든 상황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우리가 안전한 연결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시작했다.


나는 항상 시작해 놓고 후회하는 타입인데, 그러면서도 꾸준하다는 장단점이 공존한다. 그래서 계속하긴 했지만, 모임을 운영하며 나를 가장 괴롭힌 점은 '내가 그럴만한 깜냥이 되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좋은 분들과 함께했지만 모임을 진행하기에 나는 왠지 부족한 사람 같았다. 나는 상담에 빠삭한 대가도 아니며,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는 리더십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임은 계속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 마지막 모임까지 끝나버렸다.


나는 부족했지만, 같이 한 동료교사들은 훌륭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나의 부족함은 가려졌다. 혼자서만 모임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도 나의 착각에 가까웠고 애초에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함께 울고 웃었다. 어떤 날은 가벼운 사는 이야기를 했고, 어떤 날은 일상 대화에서 할 수 없는 깊은 대화들도 나누었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점이 있다. 어느 순간 모임에서 서로가 경험했던 아픔들에 대해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주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잘 느낄 수 없었다. 그한 경험을 공유할 때 누구도 동료의 삶을 비난하거나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모임을 통해 모든 아픔들이 치유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상처 앞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런 점이 내가 생각하는 모임의 성과이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힘들다며 자신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다시 할지도 모르겠다.


막상 개인이 삶에서 힘든 일이 발생하면, 오로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변에서 그 사람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누군가 내게 일하기도 바쁜데 왜 그런 일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나를 기억해 주고 손을 잡아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었다고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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