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by 교교

우울이 심한 경우나 학업이나 친구관계 등 학생이 혼자 감당하기 벅찬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직장 상사와 심하게 충돌하거나 자신이나 가까운 주변에 큰 문제가 발생하면 출근이 어려워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입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이 발생할 때 어른들은 출근하는 것보다 학생이 등교하는 것에 대부분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학생이니까 학교는 가야지"하고 말입니다. 어른이 큰 문제 안고 출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큰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두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등교하는 행위를 격려해주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서이겠지만, 힘든 아이에게는 교문을 통과해서 교실 문을 열고 또래 친구들 속에 앉는 그 모든 과정이 에너지를 요구하는 각각의 과제가 됩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학생이 노력해 온 기간을 봐주기보다 문제가 일어난 현상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우울감이 심함에도 노력을 통해 그간 버텨온 등교 기간을 봐주기보다, 등교하지 않은 며칠에 대해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자해를 하거나 흡연을 하는 학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흡연이나 자해 충동을 참아내고 건강한 대안 방법들로 노력해 온 기간은 학생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다시 흡연을 하거나 자해를 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 혼을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때, 과거에 비해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학생으로 봐주지 않고,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학생으로 보는 것은 학생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시선은 학생이 했던 그간의 노을 몰라주면서 '변화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학생'으로 인을 찍 과정 뿐입니다.


어른들이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당연하게 여겼던 행동들은,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노력으로 변화하고 버텨낸 시간입니다. 물론 어떤 학생에게는 결석하지 않고 등교하고 흡연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적인 어려움이 많고 정서적 지지와 관계적 자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은 자해하거나 흡연하거나 외현화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무조건 편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갖게 하는 지도는 필요합니다. 다만 문제가 재발했을 때는 처벌하고,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때는 관심을 거두는 방식의 징벌적인 대처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처벌을 통해 잠시 행동을 숨길 수는 있어도, 그 행동을 주도적으로 바꿔가야 할 힘을 배우지는 못합니다.


별일 없는 기간에 아이의 노력과 변화를 알아봐 주고 기억해 주는 것이, 학생이 스스로가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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