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조용하니 이토록 소중할 수가

by 김지은이

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는다. 고시원에서 지낼 땐 각 방에 40리터가 좀 넘는 정도의 작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얼음을 얼릴 수 없었다. 카페에 가는 비용은 아껴야겠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고,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얼음컵을 사다가 인스턴트 커피를 타먹곤 했다. 근데 이젠 집에서 얼린 얼음을 예쁜 컵에 양껏 넣고 리필도 맘껏 해먹을 수 있다. 조만간 핸드밀을 사서 홀빈 원두를 직접 갈아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어 봐야지.


흑미, 검은콩, 현미 각종 잡곡을 넣은 밥을 지어먹고 쌀 위에 껍질을 깐 고구마나 감자를 올려 함께 익히기도 한다. 밥 짓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 시작할 때 햇빛은 쨍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고, 마침 동네에는 차 지나가는 소리도 하나 없이 새소리만 작게 들리는 어느 주말 낮엔 여기가 천국인 것 같다.


퇴근하고 문을 열면 음식냄새가 풍겨 나오고 신발장을 지나 부엌에 들어서면 엄마가 가스렌지 앞에 서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 프라이팬을 뒤적이는 엄마의 손길을 보다보면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겁이 많던 조그만 해피는 우리집에 온 지 2주 정도가 지나자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다다다 달려와서 격하게 반겨준다. 처음 해피의 반김을 받던 날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시원에서 지낼 때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침대에 누우면 바로 위에 설치된 봉에 걸린 옷들의 끝자락이 얼굴에 닿을 듯 했던 것이었다. 막 돌린 빨래를 널어둔 밤에는 섬유유연제 냄새와 물냄새가 너무 심하게 느껴져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분이 가라앉는 밤에는 근처 24시간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기도 했다. 이젠 우리 집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널찍한 건조대에 널어두고 그리고도 공간이 한참 남아 혼자 쓰기엔 넓은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노트북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느 조용한 새벽에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문득 각잡아 널어둔 빨래들이 어찌나 예쁜 풍경으로 보이던지.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들을 계속해서 지켜내고 싶다고.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도 분명 있지만 이걸 다시 잃어버리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이런 마음은 내가 삶을 계속해서 이어갈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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