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태어난 시간을 몰랐다. 사주를 볼 땐 아쉬운대로 이름과 생일만 넣고 결과를 보곤 했다. 궁금했다. 태어난 시간까지 알고 있으면 내 미래를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을까? 나는 몇 시에 태어난 걸까? 내 생일은 정확한걸까? 내가 태어났을 때의 풍경은 어땠을까? 나를 처음 본 엄마의 마음은?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어?"
"너... 밤 11시쯤에 태어났어."
이제 엄마가 옆에 있으니 물어봤다. 그리고 엄마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노력 같은건 없이 곧바로 대답해줬다. 내가 정말 엄마한테서 나왔구나 싶었던데다가 나의 출생의 순간이 좀 더 구체화 되는 그 느낌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안심이 됐다? 그래 안심이 됐었나보다. 종종 느끼곤 했던 난데없이 내던져진 기분은 이제 내게서 사라질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에 샤워를 도와주기 위해 한 번씩 찾아가곤 했다. 맨 몸의 엄마는 훨씬 더 작아보여서 정말 이렇게 자그마한 몸으로 나를 임신하고 몇 달 동안이나 품고 있다가 낳은걸까 싶었다. 나 한 명도 아니고 동생들까지? 그건 대체 얼마나 아프고 고된 일이었을까?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했던 가장 못된 말 중 하나는 이럴거면 나를 왜 낳았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계획된 임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생겼고 그냥 낳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긴 그 과정조차도 엄마는 너무나 싫었을지도 모른다.
욕을 하자면 얼굴도 기억 안나는 아빠라는 인간한테 폭언을 퍼붓고 싶지만 나는 가까이에 있고 만만한 엄마한테 온갖 화풀이를 해댔었고 엄마는 늘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나를 가지고 나서 산후 우울증도 겪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서 원망을 들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왜인지 엄마를 다시 만나면 꼭 발을 씻겨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발을 씻겨주면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물 속에 잠긴 엄마 발만 만지작거렸다. 그동안의 고생을 다 담은 듯한 거친 발이었다. 발톱도 다 망가지고, 이게 뭐야.
"이쁜이 나오란다. 이쁜이."
가만히 앉아만 있던 엄마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원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제 내용은 입원환자들의 혈액검사가 필요하니 다들 모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엄마는 그걸 다르게 알아들었다. 어쨌든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병원에서 그래도 아는 이름이 들리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엄마, 내가 왜 이쁜이야?"
"이쁘니까."
엄마는 바보야. 왜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얘기해. 이쁘긴 뭐가 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