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집 안에서만 움직였다.
보통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지루해지면 집안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한 번씩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외래진료 받으러 가는 것 외엔 일체 외출이 없는 엄마에게
병원에선 산책을 다니거나 문화 프로그램 같은 걸 등록해보길 권유했지만 엄마는 다 싫다고 했다.
그러다 예전에 한 번씩 가곤 했다는 산과 그 산에 있는 절 얘기를 하기에
"엄마 이번 주말에 같이 다녀올까?"
했더니 대번 얼굴이 환해지며 뭘 챙겨갈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김밥이랑, 물이랑, 음료수도 챙길까? 손에 들고가긴 어려우니까 가방을 하나 들고갈까?"
"응 엄마 생각나는거 다 챙겨가자 내 가방 하나 가져가자."
"응!"
"그렇게 좋아?"
엄마는 대답 대신 웃었던 것 같다. 김밥을 직접 싸볼까도 생각했지만 번거로우니 두 줄 쯤 사가자고 의견일치를 봤다.
처음엔 엄마가 가는 길을 정말 기억할까 걱정했지만 나는 그저 엄마 발길을 뒤밟기만 하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가는 꽤 먼 길이었다.
엄마는 지하철역에서는 자연스레 노약자용 엘레베이터 앞에 줄을 섰고 (나도 그 줄에 같이 서는게 눈치가 보여 엄마 손을 괜히 꼭 잡았다.)
지하철에 타고는 또 자연스레 노약자석에 앉았다.
일반석도 비어있어 같이 앉자고 했으나
"나는 여기 앉아야 돼. 넌 저기 앉아."
하며 내게 손짓했다.
엄마와 대각선 방향의 자리에 앉아 몸을 틀어 계속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정면을 보다가 한 번씩 내게 눈길을 주었다.
엄마가 그어둔 선을 보며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을까?
내겐 엄마의 젊은시절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없는데 지금 내 눈앞에는 벌써 반백발의 엄마가 앉아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만큼일까?
아주 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산 근처에서 김밥도 두 줄 사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서 먹었다.
외출준비 막간에 챙긴 돗자리를 산에 올라 펼치고 앉았다.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은 한 번씩 사람이 오르내리는 위치여서 공터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오더니 본인들이 여기서 배드미턴을 칠 예정인데 많이 시끄러울테니 자리를 옮기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달갑게 들리지는 않았다. 왜 배드민턴을 시끄럽게 쳐야 하지?
하지만 엄마는 그 사람들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얼른 자리를 피해주려고만 했다.
나는 잘 싸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방해꾼들에게 욱하는 마음만 갖고 덤비고 싶었으나 엄마가 원치 않을 거라는게 강하게 느껴져
다시 처음의 좀 더 불편한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는 역시 여기가 더 편하다고 했다. 그래 엄마가 편하면 됐어.
하지만 처음엔 조금 열불이 나서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왜 우리가 자리를 피해줘야 하냐고, 우리가 먼저 왔었는데.
여긴 사람들 자꾸 지나다녀서 불편하다고.
그래놓고 또 가만히 앉아있다보니 사람들 지나가는 것쯤은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 것 같아.
나도 참 변덕이 심하다. 엄마는 내가 너무 여러가지를 해서 힘들다고 했다.
울다가, 웃었다가, 화냈다가, 짜증냈다가, 또 금방 웃고..
라디오를 틀어두고, 김밥을 펼치고, 무슨 과일이었는지 챙겨갔던 과일도 풀어놓고
우리는 누워서 혹은 앉아서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이따금 한마디씩 주고 받기도 했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과는 완전히 차단된 느낌이 좋았다.
매일 이렇게 평화로운 것들만 보면서 살고싶다.
“해가 아까 여기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 일로 옮겨갔네. 해가 이제 이 쪽으로 지는건가?”
“그럼, 한 시간도 더 됐는데.”
“…그냥 엄마, 내가 사는 게 힘들어서 신경질이 났어.”
“으응, 괜찮아.”
엄마는 항상 져준다. 항상 괜찮다고 해준다.
밖에는 내가 수그리지 않으면 화내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나에게 웃음만 강요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