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을 나갔다.
당시 같이 살고 있던 막내동생과 내가 심하게 싸우고 난 후였다.
엄마는 심지어 나보다도 훨씬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인데 나는 잠깐의 평화에도 그걸 잊어버린다.
퇴근하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전에 엄마를 찾았던 곳으로 가보았다.
엄마는 그 곳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집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그 날은 더 이상 엄마를 자극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판단에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길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 엄마에게 갔다.
밖에 나가기 싫다며 버티는 엄마를 조르고 설득해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나는 아침대용으로 햄버거를 먹고, 엄마는 음료 하나만 시켜 마셨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챙겨온 약을 꺼내들었는데 다행히 엄마는 별 거부반응이 없었다.
“이것만 먹으면 나 안 가도 되는거야?”
“응 그럼, 대신 엄마 이거 매일 먹어야 하는 거라서 나 내일도 올거야. 내일 이 시간에 만나자. 이 가게 앞에서. 알았지?”
“응 그래.”
“지금 몇 시인지 알아?”
엄마는 주머니에서 내가 준 손목시계를 꺼내들어 시간을 살폈다.
“8시쯤 됐네.”
“응, 나 와서 오늘처럼 아침 좀 먹게 7시 30분쯤에 보자. 알았지?”
“응.”
“엄마 나 이제 출근하러 가야 돼.”
“그래 얼른 가봐라.”
엄마는 지하철역 입구 에스컬레이터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곤 계속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뒤돌아서 점점 작아지는 엄마를 계속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 이렇게 찾아오는 걸 계속할 수 있을까? 출근 전부터 너무 피곤한데,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얼마나 지속해야 할까? 더 이상 여기로 찾아오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도돌이표인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느낌이 너무 싫다. 엄마 약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병원엔 엄마가 직접 가야 하는데.]
내 마음은 끝도 없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내가 조금 덜 아프니까 내가 움직여야지. 내가 좀 더 생각해야지.
하지만 아침부터 이런 일을 겪고 지옥같은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나도 불쌍했다.
나도 좀 기대고 싶은데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게 자기연민인가?
엄마가 나가있는 동안 엄마의 외래진료 날짜가 다가와 우선 나 혼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으시곤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아니라면 꼭 환자 본인이 직접 와야 진료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약이 며칠치 남아 있는지, 엄마를 설득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남아있는 약을 쪼개서 먹일 수 있도록 조언해주셨다.
꼭 데려오셔야 한다고도 하셨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아침마다 찾아가는 건 일주일 정도만에 끝이 났는데,
아주 버거웠던 건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햇빛이 쨍한 아침 거리 한복판에서 싸워야 했던 일이었다.
엄마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길바닥에 드러눕고 했는데
나는 그걸 견디기 어렵고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엄마를 계속 붙들어야 했다.
한적한 거리의 몇 안 되는 시선이 너무나 괴로웠지만 엄마에게 그런 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온 힘을 써서 반강제로 엄마를 택시에 태웠다.
엄마는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온순한 양처럼 물었다.
“정말 병원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데려다 주는거야?”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병원에서 한 달 단위 주사제 처방을 받았다.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큰 엄마는 그런거 잘못 맞으면 죽는다는 소리를 하며
그냥 약을 잘 챙겨 먹겠다고 했다. 거짓말. 내가 안 챙기면 안 먹을 거면서.
결국 의사 선생님의 부드러운 설득 끝에 주사를 맞고는
“조금 따끔하긴 했는데 괜찮았어.”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너무 큰 불안과 걱정을 내비치며 나까지 힘들게 했다가,
막상 시도해보고는 ‘별 거 아니었네.’ 그제서야 안심을 한다.
엄마는 안심했지만 내가 지친 건 어디 가서 풀지? 혼자 음악이나 듣고, 맛있는거나 먹어야지.
이러니 내가 살을 못 뺀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엄마는 다시 확실시 하겠다는 듯 이제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지만
나는 어물쩡 대답을 피하며 엄마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도 막상 집으로 돌아와보니 여전히 똑같은 가구들과 조용한 공간에 마음이 놓이는 듯 보였다.
다시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온걸까? 이건 며칠짜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