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김지은이

2019년 9월 6일 금요일, 연차를 사용했다.

하루동안 처리해내야 하는 일들을 순서매겨 정리해두고 혹시 어느 한 군데서 삐끗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날 봐둔 집을 계약하러 갔다.

당시엔 동생과도 같이 살 예정이었기에 무리해서 투룸을 알아보았다.

보증금 500만원에 구할 수 있는 투룸은 마땅치 않았는데 다행히 한 군데서 월세 올리고 보증금은 낮추는 것으로 금액을 조정해주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집계약시 주의사항들을 전날부터 여러 번 읽어보고 메모해둔 노트를 꼭 쥐고 부동산에 찾아갔다. 그리고 노트를 이따금씩 들춰보며 이것저것 문의하자 이 정도 소액으로는 세세하게 따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 소액이 내가 얼마나 간신히 마련한 돈인지는 중요하지 않겠지.


말없이 속상했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월세 올려주기로 했으니 공과금을 월세에 포함시켜 달라고 말해보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본인이 운을 띄우겠다고 했다.

마침 부동산으로 들어서는 집주인 부부에게 부동산 아저씨가 계획한대로 말을 꺼내주신 덕분에 공과금을 월세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됐다. ​


계약서를 사이에 두고 집주인 부부와 마주보고 앉아서는 월세 자동이체, 특약조항등을 두고 조그만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면서 계약을 마쳤다.

집주인 부부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복비를 협상하여 2만원을 깎았다.

같이 있던 내게도 2만원 뺀 금액 입금하면 된다고 하셨으나 난 원래 금액을 입금하고는 감사표시로 다 드리고 싶었다는 문자를 따로 보냈다.


동사무소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았다. ​

이제 엄마 퇴원수속을 하러 가야한다.

면회 땐 병실로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매번 무거웠는데 이번엔 같이 나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산뜻하다.

준비해간 엄마옷을 간호사분께 건넸고 잠시 뒤 그 옷으로 갈아입은 엄마가 병실 쪽에서 나온다.

엄마의 표정도 밝아보인다.


퇴원 전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 면담해주는 시간이 있어 엄마와 함께 휴게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나가면 돈도 벌고 이것저것 하겠다고 말한다. 옆에서 듣던 나는 또 덜컥 겁이난다.


엄마가 또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하지? 그걸 또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여태까지 해 온 것들은 소용이 없었나? 결굳 도돌이표인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화내는 것보다 울 때 안절부절 못한다. 왜 그러냐며 초조해한다.

나는 엄마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소리없이 통곡하고 있었다. ​


마침 다가온 의사 선생님이 내게 인사하려다 내 얼굴을 보시곤 조금 놀라신 듯 하다.

엄마가 돈 벌러 다닐거라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마 그 말 속에 담긴 내 불안도 읽으셨을 것 같다.엄마에게 약 잘 챙겨드시고, 어디 가지 마시고 따님과 잘 지내시라고, 꾸준히 외래도 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시원으로 돌아와 이삿짐을 마저 정리한다.

엄마는 침대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곤 이렇게 아담한 집이 좋다며 이런 방 두 개 얻어서 각지 하나씩 살자고 한다.


엄마 나는 여기서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그리고 여긴 집이 아니라 그냥 방이야.. 여기 두 개 얻을 돈이면 우리 가는 집 월세보다 더 비싸..


엄마는 그렇냐고 수긍하는 듯하다가도 여전히 이렇게 작은 곳이 좋다고 말힌다.

나는 어느순간 더 반박하지도 수긍하지고 않고 일에만 집중한다.

끝도 없이 나오는 물건들에 내가 이 좁은 곳에 뭘 이렇게 많이 뒀었나 싶다.

방키를 책상에 올려두고 빈 방을 한 번 둘러본 뒤 내려가 콜밴에 올라탄다.

콜밴 기사님은 우리 짐이 너무 많아 당황하신 것 같았다.

동생과 나의 이삿짐을 너무 적게 생각해 죄송스러웠다. (동생도 같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콜밴 기사님은 엄마 건강도 잘 회복되실거고 앞으로 잘 될거라며 덕담을 해주신다.

그간 고개숙이고 걷던 거리들이 떠나는 차 안에서 보니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사할 곳에 도착한 뒤 기사님께 원래 콜밴 비용의 두 배를 담은 봉투를 건넸다.

기사님은 혹시 돈 더 넣은거 아니냐며 열어보시곤 다 못 받는다며 2만원만 더 받겠다고 기어이 얼마간은 되돌려주셨다.

선물로 받았으나 마시지 않고 아껴두던 와인을 다소 억지로 안겨드렸다.

"짜잔 엄마 여기 이제 우리집이야"


엄마는 집에 들어서며 큰 반응없이 천천히 집 안을 살핀다.

동생도 그저 힘들어서 빨리 쉬고 싶은 것 같다.

나 혼자 들뜬 듯 하지만 같이 살 집에 진짜로 들어왔으니 아무렴 어떠랴.

엘레베이터 없는 3층을 여러 번 오르내리며 짐을 옮기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부엌에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 집청소를 시작했다.

동생은 눈치를 보며 이제 그만 드러눕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오늘 유난히 관대하니 얼른 가서 자라고 말한다.

청소하는 중간중간 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잠시 앉아 양쪽 방에서 잠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기도 하고, 때때로 울컥하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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