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 집에 옵션은 가스렌지 하나였다.
깨끗해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방바닥엔 먼지가 가득했고 욕실엔 깨진 타일조각 같은 것들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빛바랜 자주색 번기커버도 맘에 안들었다.
청소를 끝낸 후에도 수납장 등이 없어 짐을 제대로 풀지 못했고 방바닥에서의 식사도 며칠간 이어졌다.
이사 직후엔 인터넷 설치전이라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빌려서 혹은 피씨방에서 가전, 가구들을 찾아보고 주문했다.
피씨방에 갔을 땐 예전에 한창 게임에 중독됐던 시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 즐기던 게임에 다시 접속해 보았는데 채 10분도 안돼 흥미를 잃었다. 오히려 비밀번호 찾는데 더 오랜 시간을 쓴 듯 했다.
나도 변하긴 하는구나. 이런 것도 변했으니 다른 부분에서도 변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곧 게임은 끄고 영화를 틀어둔 채 본래의 방문목적인 쇼핑에 집중했다. 돈을 쓰는 일은 역시 참 간단하고, 재밌다.
얼마 후부터 택배 혹은 설치기사님 방문으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물건들은 집에 동생이 있었기에 문제없이 수령이 가능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는 아무리 고개 숙여도 염치없을 일들을 조금은 더 마음 편하게 부탁할 수 있었다.
결국엔 가격을 가장 먼저 보게 되고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품으로 구매한게 대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는 타협으로 선택한 제품이더라도 받아보았을 땐 마냥 좋았다.
새 냉장고의 얇은 필름을 떼어내고 하얀 몸통을 쓰다듬어 볼 때, 새 세탁기에 최초로 빨래 돌릴 때, 직접 조립한 선반에 전자렌지와 밥솥이 알맞게 들어갈 때, 새 밥솥으로 처음 잡곡밥을 지어봤을 때...
기뻐할 수 있는 순간은 구석구석에 있었다.
아, 정말정말 좋았던 건 새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누웠을 때. 엄마에게 편한 잠자리를 주고 싶어 좀 무리해서 구매했는데 한 번 누워보니 그 가격이 수긍됐던 경험이었다.
막상 엄마는 맨바닥이 더 편하다고 해서 서운했지만 말이다.
당장 대체품이 없는 것들부터 구매하고 난 뒤엔 작은 부분들에 내 취향을 담아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무늬가 예쁜 머그컵이라던가, 귀여운 숟가락, 또 귀여운 분리수거용 바구니 같은 것들.
우연히 샤워필터기를 알게 되어 교체하고 난 뒤엔 정말 신세계를 맛 본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나오는 물줄기에 레몬향까지 솔솔 나니 다들 얼른 씻어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꼭 바꾸리라 벼르던 변기커버를 드디어 새하얀 무소음 커버로 교체했을 땐 또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볼트 끼우는 홈 크기가 맞지않아 단단하게 고정되진 않았지만, 그래서 변기 위에서 제멋대로 움직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