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챙기지 않았다

by 김지은이
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물고기에 대해 연민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엄마랑 자주 싸웠다.

나는 그 때마다 말했다. “무슨 엄마가 이래?”

내게는 엄마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어떤 기준들이 있었고 나의 엄마는 그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 말을 뱉을 때면 매번 침묵했는데 어느 날은 침묵을 끊고 한 마디를 했다.

“나 엄마 아닌데, 나 그냥 난데.”


당장 그 자리에서는 나의 엄마이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느껴져 분한 마음에 더 화를 냈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내게 그건 코딱지만한 책임감마저 상실한 어이없는 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그 뒤에도 이따금씩 나타나 머릿속에 맴돌았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


엄마는 어떻게 엄마가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양육계획을 미리 세우고 아이를 갖기도 한다던데 엄마에게도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임신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주변의 반응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한 감각들이 찾아왔을 때에는 어떻게 견뎠을까?

엄마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된 상태에서 그 책임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을까?


처음 생리를 했던 날이 생각났다.

초등학생이었고, 학교 화장실에서 알게 되었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본능적으로 찾아간 보건실에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모르니 겁만 났다.

몸 속에 다른 생명을 품은 엄마는 알았을까? 자신의 앞으로에 대해서?




“니가 잘해야 한다.”


어릴 적 이모들은 엄마와 동생들의 인생이 모두 다 내 처신에 달린 것처럼 말했었다.

그 말에 순순히 젖어 드는게 나를 옭아매는 건 줄도 모르고 나는 그 임무를 완수하고자 했다.

희생정신을 머릿 속이나 마음 속 어딘가의 밑바닥에 두텁게 깔아둔 채 내 손으로 책임감을 어깨에 하나씩 얹어 나갔다.




큰이모 집에 놀러갔던 적이 있다.

서로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해도 신빙성이 있을만큼 인구가 적은 마을이었다.

나는 그 곳에 있는 내내 실체를 모르겠는 불편한 감정에 시달렸다.

나는 그 때까지도 쓸데없이 순진했는데 그 실체를 모르겠는 감정을 한 번씩 돌아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의 방향은 많이 틀어졌을 것이다.


오랜만에 조카가 온다고 큰이모의 딸(내게는 사촌언니인) 부부도 찾아와 복작복작해졌던 날 집에 있던 모든 여자들이 작은 부엌에 모여 상을 차렸다.

가만히 기다리던 큰이모의 사위가 상석에 위치할 수 있도록 밥상을 펴고 앉자 다들 식사를 시작했다.


밥을 먹고 티비를 보는 것 외에는 같이 할 만한 게 마땅치 않았던 이모들과 나는 함께 산책을 했고 도중에 나무 아래 평상에 앉은 아저씨들을 만났다.

우리는 잔잔히 수다를 떨며 걷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들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목소리가 잦아들던 이모들이 말했다.

“얼른 조용히 지나가자 쳐다보지 말고.”

그 아저씨들의 노골적이고 불편한 시선이 우리의 등 뒤에까지 꽂혔다.


어느 날은 큰이모네와 이웃한 할머니가 놀러와서는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본인 댁에 장가가고 싶어하는 아들이 있다고, 나보다 20살쯤은 많다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내게 붙이려 했다.

큰이모가 옆에서 거들었다.

내 이름 석자도 모르면서 미혼여성 혹은 가임기 여성이라는 게 관심의 전부였을 징그러운 경험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언니야. 얘 아직 20대다. 거의 20살이 차이나는데."

타박하는 작은 이모에게 큰이모는 열심히 본인의 친구와 그 아들을 옹호했다.




나는 내가 억지로 떠맡았던 책임감을 엄마에게도 강요했고, 큰이모는 여성이기에 마땅히 해야 한다고 믿는 것들을 내게 강요했다.

그게 우리들에게서 내내 떨어져나가지 않던 악순환이었다.

여럿 중 좋은 것을 고르고 골라 줄 수 없었던 우리들은 그냥 그런갑다 믿고 살았던 하나를 판단도 없이 상대에게 떠넘겼다.




어버이날을 챙기지 않았다.

작년에는 카네이션을 준비했었는데 그냥 남들 다 챙기는 날이고 나는 한 번도 챙겨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솔직한 이유였다.

주는 나도 받는 엄마도 어색했던 것 같다.

사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웠던 적이 별로 없다.

날 낳아준 것조차 고맙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아무렴.


대신 엄마의 생일을 어떻게 보낼까 좀 더 고민해본다.

틈틈이 엄마의 식성이나 취향을 떠보며 그 날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엄마라는 호칭 대신 별칭으로 불러본다.

엄마한테 속상한 게 생기면 차라리

“이 말썽쟁이야. 엄마가 내 딸 해. 내가 엄마 할테니까.”

장난을 반쯤 섞어 안좋은 기분을 터놓는다.

어른한테 버릇없어 보일 수 있는 이런 태도에 오히려 엄마는 크게 웃는다.


우리 그냥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엄마도 맨날 엄마일 필요는 없고 나도 매일 첫째 딸일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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