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아직 과거의 나에 머물러 있었다
19일 차. 직원을 피하게 된 이유
점심이나 저녁 약속 장소가 회사 근처로 정해질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오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 건물 근처에 가는 일 자체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혹시라도 직원들을 마주칠까 봐서,
나도 모르게 직원들이 잘 다니지 않는 동선을 택하게 됩니다.
마주쳤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러웠던 인사가, 이제는 편하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직원을 만나게 되면 대화는 늘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마치 미리 짜여진 대본처럼요.
어떤 직원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상무님, 잘 지내시죠?”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저하고도 저녁 한번 하셔야죠.”
저는 익숙한 말로 답합니다.
“응, 잘 지내고 있어. 백수가 되니까 약속이 많아져서 오히려 더 바쁜 것 같아.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실감나네. ○○부장은 잘 지내고 있지?
다음 달에 연락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아직 설명되지 않은 나 자신이 숨어 있었습니다.
대화는 무난하게 끝납니다.
그 직원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저는 웃으며 답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자리를 지나치고 나면, 마음 한쪽이 묘하게 불편해집니다.
괜히 말을 많이 한 것 같고,
괜히 설명을 덧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 불편함의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들을 대하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자격지심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이 만들어낸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과거의 나’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자격지심은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생겨난 감정이 아니라,
내 삶의 역할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이 신호를 외면하면 사람을 피하게 되고,
이 신호를 인정하면 나 자신을 다시 세울 준비를 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 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