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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콩 Jan 22. 2019

왜 가난이 '순수함'인가

왜 우리는 가난을 아름답게 포장하는가

최빈국 미얀마에서 1년

2016년 홍보 회사를 다니며 연말에 휴가로 미얀마를 처음 찾았다. 가보지 않은 국가를 방문하고 싶었던 도전 정신으로 오지라 생각했던 미얀마를 찾았다. 당시 왕복 80만원이 항공권 예산으로 이곳을 찾았던 건데 가까운 동남아를 감안하면 엄청난 비용으로 찾은 것이었다. 그 때의 여행에서의 미얀마는 너무나 따뜻한 공간이었다. 이국적인 그 너머로 사람들의 순수함을 느꼈다. 그렇게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다시 이곳에 ODA사업으로 오게되었다.


그렇게 살게된 1년. 살아본 '미얀마'는 확연히 다르게 보였다. 이젠 미얀마를 순수하다는 표현으로 이 나라를 대표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그 나라에 안에 살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의 상황을 절실히 이해되곤 한다.


미얀마의 교육 문제는 심각하다. 군부가 오랫동안 권력을 쥐면서 우민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고등교육 시스템의 참담함은 여전하다. 천연가스와 티크 나무 같은 천혜의 자원의 보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1인당 GDP는 1300달러(1년에 147만원의 소득) 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바짝 일하면서 5000원 남짓 버는 소득이다. 미얀마는 석유에서의 발생하는 부를 기술이 없어 실질적인 부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거버넌스의 부재는 교육, 보건, 복지의 엄청난 세상에 찌들어져 있는 눈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개도국에서 가장 필요한 세상을 변화시킬 있는 세상의 눈이니까 말이다.

나처럼 누군가는 관광으로 찾은 가난한 국가의 느낌을 순수로 표현한다. 상업화, 현대화 되지 않은 현실을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한다.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는 것은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그 안에는 자본주의가 있고 교육이라는 지식사회의 부의 법칙이 숨어 있다.


치열함이 자원 없는 우리 사회를 안정적인 국가로 만들어 냈다. 반면 우린 치열함과 행복 간에 모순을 느낀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순수를 이야기한다. 여행지에서의 찰라의 순수는 미래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순수가 미래를 담보하진 않는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우물을 파 식수로 써야하고, 비가 오면 전기가 끊어지고, 냉장고 없는 집에서 음식을 해먹어야한다. 당연히 위생과 보건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는 인지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화목한 가정을 원하고 건강한 삶을 원한다. 여행자로서 느끼는 순수함을 깊게 들여다보면 참혹함이 된다. 


의료 봉사를 갔었다. 제대로 된 약도 아닌. 항생제와 비타민 만으로 온동네 주민들이 가득찬다. 


우리는 여행객으로서 '순수'라는 말로 인간의 권리가 보장 받지 못한 것을 아름다운 말로 꾸며낸다.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건 순수를 우러러 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변화. 국제사회에서의 관심. 그 가난에 대한 작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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