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창문이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몇 시간을 달렸을까. 덜컹거리던 차체가 멈춰 섰다.
"내려."
짧고 강압적인 명령. 호준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짐짝처럼 버스 밖으로 떠밀려 나갔다. 차가운 산바람이 뺨을 때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요새처럼 버티고 있었다.
[직업 훈련원 제4구역]
정문에 걸린 현판은 글씨마저 권위적이었다. 높은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둥글게 말려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붉은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교도소... 아니, 수용소인가.'
호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끌려온 사람은 호준뿐만이 아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 화려한 옷을 입은 30대 여성, 앳된 얼굴의 20대 아가씨,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의 화가까지.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강당에 모여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여기가... 우리가 교육받을 곳인가요?"
누군가 작게 속삭였지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강당 내부는 스산했다.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천장에는 기괴하게도 굵은 밧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마치 교수대처럼.
"밧줄...?"
중년의 여성이 천장을 가리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져나갈 때, 강당 전체를 울리는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직업 훈련원 4구역에 입소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으로 변조된 남자의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모든 생활은 제가 관리합니다. 이곳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과거를 잊으십시오. 사회에서의 지위, 재산, 명예... 그딴 건 여기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더 낮고 위압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이름도 잊으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에게 이름은 없습니다. 호명은 알파벳으로 대신합니다."
강당 전면 스크린에 배치도가 떴다.
A: 50대 중년 남성 (사업가 출신)
B: 30대 여성 (비서 출신)
C: 40대 남성 (화가)
D: 50대 여성 (대학교수 출신)
E: 30대 여성 (패션 디자이너)
F: 20대 여성 (사회 초년생)
G: 20대 남성 (이호준)
"이호준 입소자, 아니 훈련생 G. 알아들었습니까?"
갑자기 자신의 알파벳이 호명되자 호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름은 존재의 증명이다. 그것을 뺏는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살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이봐요! 당신 누구야? 얼굴 보고 얘기해!"
호준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이건 인권 유린이야! 우린 범죄자가 아니라고! 직업 훈련이라며! 취업 시켜준다며!"
"시끄럽습니다."
목소리는 호준의 분노를 가볍게 무시했다.
"G 훈련생.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군요. 당신들은 사회에서 낙오된 불량품입니다. 불량품을 고치려면 깎고, 다듬고, 때로는 부러뜨려야 하는 법이죠. 오늘부터 여러분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 나가는 것.“
그때였다. 강당 문이 벌컥 열리며 검은 제복을 입은 조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몽둥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입소 절차를 시작합니다. 반항하는 자는 즉시 교육 들어갑니다."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된 사람들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호준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옆에 있던 E(패션 디자이너)가 호준의 옷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
"참아요. 지금 나서봐야 개죽음이에요."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동질감이 서려 있었다. 호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다.
그날 밤, 숙소. 남녀가 구분된 방에 짐을 푼 7명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모두가 지쳐 보였다.
"정말... 우리가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가장 어린 F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녀는 고아로 자라 갓 취업했다가 회사가 망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가야지. 난 아직 할 일이 많아."
A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D는 교수였고, B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다. C는 그림만 그리다 굶어 죽을 뻔해서 잡혀왔다고 했다.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돈이 없어서', '직업이 없어서' 죄인이 된 사람들.
"전 인정 못 합니다."
호준(G)이 침묵을 깼다.
"이건 교육이 아닙니다. 사육이지. 전 어떻게든 나갈 겁니다. 제 발로."
"탈출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B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꿈 깨요. 밖에는 철조망에 경비견까지 깔려 있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빨리 취업해서 나가는 게 상책이라고요."
"맞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맙시다. 우리까지 피해 보면 어쩔 거예요?"
C도 거들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순응'을 택하고 있었다. 체제에 길들여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D(교수)가 입을 열었다.
"G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B와 C의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일단은... 지켜봅시다. 저들이 정말 우리를 취업시켜 줄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가장 연장자인 D의 중재에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호준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좁은 방 안에 감도는 미묘한 긴장감을. 생존이라는 목줄이 죄어올 때, 과연 우리는 끝까지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호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훈련원의 담장은 너무나 높았고, 밤하늘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호준의 옆으로 다가왔다. E였다.
"아까는 고마웠어요. 대신 화내줘서."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라도 뭔가 계획이 생기면... 저한테도 말해줘요. 저도 여기 가만히 있을 생각 없으니까."
호준은 E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적어도 한 명. 말이 통하는 동료가 생겼다. 하지만 호준은 몰랐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 같은 '정신 교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음 화 예고]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간이 아닙니다. 개가 되십시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충격적인 교육. 가스실의 공포 속에서 호준은 굴복을 강요당하는데...
작가후기?
오늘도 무사히 한편 올라 갑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