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병들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경기 침체와 불황의 늪은 깊고 어두웠다. 중소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대기업들마저 살기 위해 제 살을 깎아내며 정리해고의 칼춤을 췄다.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났고, 희망은 사치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정부는 고심 끝에 칼을 빼 들었다. 국회의원들이 밤새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특별법'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세상에 공표되던 날, 대한민국은 뒤집혔다.
모든 TV 채널과 라디오, 스마트폰 화면이 일제히 긴급 속보로 전환되었다. 앵커의 건조하고 딱딱한 목소리가 국민들의 고막을 때렸다.
"긴급 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국회는 국가 경제 비상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실업자 교육법'을 긴급 가결했습니다."
화면 속 앵커는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이 법은 직업이 없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무상교육을 실시, 전 국민의 노동력화를 목표로 합니다. 이에 따라 모든 실업자는 3일 이내에 신고해야 하며, 10일 후 지정된 장소로 입소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처럼 들렸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 뒤에 이어졌다.
"만약 신고하지 않거나, 정해진 장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앵커가 잠시 숨을 골랐다.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게 되며, 강제로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국적 박탈. 강제 추방. 그것은 곧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뉴스가 끝나자마자 거리는 패닉에 빠졌다. 인터넷은 욕설과 비명으로 도배되었고, 청와대 앞은 시위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공권력은 무자비했다. 시위는 순식간에 진압되었고, 직장을 가진 '쓸모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애써 눈을 돌렸다. 결국 힘없는 소수의 실업자들은 자유를 포기한 채, 국가가 쳐놓은 거대한 울타리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취업을 시켜준다는 그 희망 같지 않은 희망을 붙잡고서.
지하 냄새. 눅눅한 습기와 톱밥 냄새, 그리고 오래된 먼지 냄새가 섞인 이 익숙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이호준(28세)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주위를 살피며 건물 지하로 뛰어 들어왔다. '예술극장 영혼'이라는 낡은 간판이 위태롭게 매달린 곳이었다.
"호준이 왔냐?"
망치질을 하던 대표 한표가 땀을 닦으며 그를 반겼다. 무대 위에는 호준의 또래로 보이는 남녀 단원들이 세트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호준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이곳은 특별법의 사각지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법 지대였다. 연극배우도 엄연한 직업이다. 호준도, 저기서 조명을 달고 있는 현이도, 대사를 외우는 정화도 모두 직업인이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실업자 교육법'은 월수입 70만 원 미만은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극단원 전원은 실업자이자, 신고를 거부한 범법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공연이 고작 6일 남았기 때문이다.
"자, 작업 멈추고 연습 시작하자! 오늘부터는 런 스루(Run-through)다!"
한표의 외침에 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음악이 흐르자, 호준의 눈빛이 변했다. 밖에는 살벌한 공권력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는 자유로웠다.
뮤지컬 <그리스>의 오프닝 곡 'Summer Nights'의 경쾌한 리듬이 지하 연습실을 채웠다.
"Summer loving 해질녘에~"
호준이 노래를 시작하자 남자 배우들이 춤을 추며 화음을 넣었다. 억압된 현실과는 정반대의, 찬란하고 밝은 여름밤의 노래였다. 그 아이러니함 속에서도 그들은 웃고, 땀 흘리며 열정을 쏟아냈다.
"자, 다음 장면!"
오프닝 연습이 끝나고 호준이 무대 중앙에 큐브를 놓고 앉았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효과음이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게임에 몰입하는 백수 연기를 막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쾅! 쾅! 쾅!
굳게 잠가두었던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음악 소리가 뚝 끊겼다. 거친 발소리와 함께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들 사이로 사복을 입은, 눈빛이 뱀처럼 차가운 남자가 걸어 나왔다.
"강한표, 이호준, 김현, 최상혁... 남자 7명 맞습니까?"
사복 경찰은 마치 물건 재고를 파악하듯 건조하게 이름을 불렀다. 연출인 한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섰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송여울, 강희경, 박소희... 여자 5명도 맞군."
한표의 질문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호준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 맞는데 댁들은 누구냐고!"
호준이 소리치자, 그제야 사복 경찰이 그를 쳐다봤다. 경멸이 담긴 눈빛이었다.
"우리는 특별법을 따르지 않고 숨어있는 당신 같은 쓰레기들을 청소하러 온 특별 경찰입니다. 당신들은 법이 정한 '실업자'입니다."
"우린 연극을 하는 예술가들입니다! 배우고, 스태프고, 연출이란 말입니다! 직업이 있는데 왜 잡으러 온 겁니까?"
호준이 악을 쓰며 대들었다. 하지만 경찰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 3년간 평균 수입 70만 원 미만. 그게 당신들의 성적표더군요. 국가 기준으론 당신들은 그냥 백수야. 그것도 신고 안 한 악질 백수."
경찰이 손을 까딱였다.
"법대로 집행해. 모두 체포하고... 여기에 있는 것들은 싹 다 부숴버려."
"뭐?"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몽둥이를 든 경찰들이 세트장으로 달려들었다.
"안 돼!"
호준이 몸을 날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공들여 만든 무대 세트가 몽둥이질 한 번에 박살이 났다.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자들은 바닥에 처박혔고, 여자들은 머리채가 잡혀 끌려갔다.
"이 개자식들아! 그건 너희 같은 놈들이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니야!"
이성을 잃은 호준이 세트를 부수던 경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경찰이 휘청거렸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이 새끼가!"
사방에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전신을 강타하는 고통. 호준은 바닥에 쓰러져 웅크렸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부서진 무대와 피를 흘리며 끌려가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꿈이야... 말도 안 돼...'
하지만 뺨에 닿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감촉은 소름 끼치도록 현실이었다. 그렇게 호준의, 아니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옥이라 불리는 '직업 훈련원'의 입구는 이미 열려 있었다.
작가후기
네 그전부터 쓰고 싶었던
희곡을 각색한 소설 입니다.
물론 희곡도 제가 쓴거지만......ㅋㅋㅋㅋ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