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이 구역은 출입 통제입니다."
지하 1층 복도 끝, 육중한 철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이 G(호준)의 앞을 막아섰다. G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노란 완장이 찬 팔을 들어 보였다.
"원장님 특별 지시야. 지하 시설 안전 점검이다. 비켜."
"하지만 통보받은 게 없습니다."
"지금 무전 쳐서 원장님 귀찮게 해드릴까? 아니면 그냥 문 열래? 1분 준다."
G의 서늘한 눈빛과 권위적인 태도에 경비병이 주춤했다. D가 미쳐서 끌려간 것을 본 직후라, 새로운 반장의 심기를 거스르기 두려웠던 것이다. 덜컹. 철문이 열렸다.
"수고."
G는 짧게 내뱉고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후끈한 열기와 기계 소음이 훅 끼쳐왔다. 이곳은 지상의 작업장과는 다른, 음습하고 비릿한 공기가 흘렀다.
G는 주머니 속의 철사를 만지작거렸다. 목표는 '지하 2층 전력 통제실'. 메인 배전반을 합선시켜 훈련원 전체를 암흑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복도는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CCTV의 사각지대를 찾아 벽에 붙어 이동하던 G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위잉— 위잉— 칙. 규칙적인 기계음과 함께 희미한 약품 냄새가 났다. 전력 통제실 방향이 아니었다.
'뭐지?'
호기심이 공포를 눌렀다. G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 바이오 연구실]
생뚱맞은 팻말이 붙은 문이 보였다. 직업 훈련원에 바이오 연구실이라니?
문은 전자 도어록으로 잠겨 있었다. 하지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통해 안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유리창이 있었다. G는 숨을 죽이고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G는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얀색 타일로 된 실험실. 수술대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온몸에 링거 줄과 전선이 연결된 채,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
F였다.
소각 처리되었다던, 재가 되었다던 막내 F가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만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은 천장을 향해 열려 있었고,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물려 있었다. 침대 옆 모니터에는 복잡한 생체 신호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샘플, 뇌파 반응이 아주 흥미로워요.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 추출한 데이터라 그런가?" “
원장님이 아주 좋아하시겠어. 이번 신약 개발의 핵심 데이터가 될 거야."
샘플. 데이터. 신약 개발. G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이곳은 단순한 노동 착취 현장이 아니었다. 원장은 밑바닥 인생들을 모아다가 불법 임상 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D를 미치게 만들고, F를 자살 시도까지 몰고 간 그 모든 극한 상황들이 전부 '데이터 수집'을 위한 실험 과정이었다.
'악마 새끼들...'
G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로 혈관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F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가면 개죽음뿐이다. 저 안에는 무장 경비원도 있었다.
'참아야 해. 지금은 아니야.'
G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전력을 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추악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야!"
복도 저편에서 순찰을 돌던 경비병과 눈이 마주쳤다. G는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반장? 반장이 왜 여기 있어! 서라!"
경비병이 무전기를 들고 쫓아오기 시작했다. G는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F가 살아있다. 원장은 우리를 실험쥐로 쓰고 있다. 이 엄청난 진실이 G의 어깨를 짓눌렀다.
간신히 1층으로 올라와 작업장으로 향하는 복도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E와 마주쳤다. E는 땀범벅이 된 G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뭐야? 완장 차니까 힘자랑이라도 하고 다닌 거니?"
E의 비아냥거림이 들리지 않았다. G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E의 팔을 와락 붙잡았다.
"E... 들어봐. 내 말 믿어야 해."
"이거 놔!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F가... 살아있어."
E의 동작이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뭐...? 너 지금... 무슨 소리를..."
"소각된 게 아니었어. 지하에... 놈들이 F를 실험실에 가둬놨어."
G의 목소리는 공포와 분노로 갈라져 있었다. 그 절박한 눈빛에 E의 마음속에 쌓였던 불신의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그냥 나가는 게 아니라, 이 지옥을 무너뜨리고 F를 데리고 나가야 해."
G의 눈에서 다시 야수의 빛이 타올랐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다음 화 예고]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G와 E는 다시 손을 잡는다. G는 원장을 속이기 위해 더욱 악랄한 연기를 계속하고, E는 작업장에서 동료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정기 검진일', G는 거대한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