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98년 봄, 텅 빈 캠퍼스와 자판기 커피

by 홀로서기

1998년 3월. 개강을 했지만 캠퍼스는 썰렁했다. 강의실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야, 민수는?"

"군대 갔어. 등록금 못 내서 그냥 입대했대."

"철수는?"

"휴학하고 알바 뛴다더라."


IMF 폭풍은 내 친구들을 하나둘씩 캠퍼스 밖으로 내몰았다. 살아남은 자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뉴스에선 온 국민이 장롱 속 돌반지까지 꺼내는 '금 모으기 운동'이 한창이었다.

주말, 누나가 광주로 내려왔다. 우리의 데이트 풍경도 확 달라져 있었다. 패밀리랜드나 비싼 레스토랑은 이제 '사치'였다.


"호준아, 날씨 좋다. 우리 그냥 학교 벤치에서 먹을까?"


그녀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건, 집에서 직접 싸 온 김밥 두 줄보온병이었다.


"사 먹는 밥 지겹잖아. 내가 좀 말아봤어. 옆구리 터진 건 애교로 봐줘."


우리는 캠퍼스 잔디밭, 볕이 잘 드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변변한 반찬도 없이 단무지만 들어간 김밥이었지만, 꿀맛이었다. 목이 메면 자판기에서 뽑은 300원짜리 믹스 커피를 나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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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병원은 좀 어때?"

"똑같지 뭐. 다들 힘들다고 난리야. 그래도 안 잘린 게 어디냐."


그녀는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잔주름이 살짝 보였다. 지난겨울, 가장의 무게를 견디느라 부쩍 늙어버린 내 여자친구.


"호준아."

"응?"

"나 금 모으기 운동 때, 내 돌반지랑 엄마 목걸이 냈다."

"진짜? 아깝지 않았어?"

"아깝지. 근데... 나라가 망하면 우리 사랑도 힘들어질까 봐.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해서."


그녀가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적거렸다.


"우리 호준이 졸업할 때는 취직 잘 돼야 하는데... 누나가 그게 제일 걱정이네."


자신은 김밥 꽁다리를 먹으면서도, 내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여자.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이마를 가만히 덮어주었다.


"걱정 마. 나 악바리잖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누나 호강시켜 줄게."

"피식, 말이나 못 하면."


1998년의 봄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그녀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만한 계절이었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서로가 있어서 마음만은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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