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대한민국이 프랑스 월드컵 열기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우리 커플에겐 월드컵보다 '상봉'이 더 큰 이벤트였다. IMF 한파 속에서도 장거리 연애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간호사 누나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나의 얇은 지갑 사정으로 만남은 늘 가뭄에 콩 나듯 했다.
"호준아! 나 듀티(근무표) 바꿨어! 멕시코전 보러 내려갈게!"
"진짜? 무리하는 거 아니야? 어제도 나이트 했다며."
"괜찮아. 버스에서 자면 돼. 치킨 시켜놓고 딱 기다려!"
6월 13일, 멕시코전이 열리는 날. 그녀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오후 5시 버스를 탔다고 했다. 광주까지 4시간. 막히면 5시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나는 자취방 시계만 쳐다보며 그녀가 탄 버스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자취방 문이 벌컥 열렸다.
"왔다! 아이고 허리야..."
그녀는 파김치가 되어 들어왔다.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느라 눌린 머리, 퉁퉁 부은 다리. 하지만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건 '붉은 악마 티셔츠' 두 장이었다.
"자, 이거 입어! 서울에선 이게 유행이야. 오늘 목 터지게 응원하는 거야!"
자취방에는 눈치 없는 내 동기 녀석들까지 껴서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우리는 좁은 방바닥에 엉겨 붙어 14인치 TV를 켰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전반전, 하석주 선수의 왼발 프리킥이 터졌다.
"와아아아악!! 골이다!!"
자취방이 떠나갈 듯한 함성. 서울에서 300km를 달려온 그녀도, 방구석 여포인 나도 서로 얼싸안고 방바닥을 굴렀다.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백태클 퇴장, 그리고 1대 3 역전패. TV 속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자, 좁은 방 안엔 침묵만이 흘렀다.
"아... 진짜... 이게 뭐냐..."
친구 놈들이 한숨을 쉬며 돌아간 뒤, 방엔 우리 둘만 남았다. 그녀는 벽에 기대앉아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 피곤하지?"
"어... 좀 허무하네. 이거 보려고 그 고생을 해서 내려왔나 싶고."
그녀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왕복 8시간의 길. 내일 오후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그녀였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부은 종아리를 주물렀다.
"그래도... 누나 와서 좋았어. 졌어도 누나랑 봐서 덜 슬프네."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혼자 서울 자취방에서 봤으면 울 뻔했다. 너랑 있어서 다행이야."
창밖엔 새벽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1998년의 여름. 우리의 월드컵 첫 경기는 쓰라린 패배로 끝났지만, 서울과 광주를 잇는 고속도로 위엔 패배보다 더 진한 우리의 사랑이 달리고 있었다.
작가후기
네. 월드컵..........ㅋㅋㅋㅋㅋㅋㅋ
잘 기억이 안났지만.......ㅎㅎ
자료조사하다보니 바로 생각남..........ㅋㅋㅋㅋㅋ
깊은 빡침...........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