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듯한 폭염이 계속되었다.
"호준아, 나 휴가 받았어. 딱 2박 3일."
누나의 목소리는 반가움보다 지침이 묻어있었다. 병원 일에, 집안 빚 걱정에 찌들어 '번아웃' 직전인 그녀. 어디 근사한 호텔이라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내 지갑 사정은 여전히 'IMF'였다.
"누나, 몸만 와. 이번 휴가는 내가 책임질게. '이호준 표 힐링 캠프' 오픈이다."
나는 동기 놈들에게 사정사정해서 낡은 텐트와 코펠, 버너를 빌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광주에서 버스로 갈 수 있는 지리산 화엄사 계곡. 차가 없으니 배낭에 쌀, 김치, 얼린 생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냉동 삼겹살을 꽉꽉 채워 넣었다. 배낭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명당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어? 이거 폴대가 왜 안 맞지?"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와 씨름하는 나를 보며, 그늘에 앉아 있던 누나가 깔깔 웃었다.
"야, 군대도 안 갔다 온 놈이 텐트는 칠 줄 아냐? 비켜봐."
결국 텐트는 '맥가이버' 누나의 손길로 완성됐다. (역시 연상은 위대하다.)
우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돌 틈에 끼워 차갑게 식힌 수박을 쪼개 먹었다. 매미 소리와 물소리가 병원 소독약 냄새를 씻어주는 듯했다.
"아... 살 것 같다. 에어컨 바람보다 백배 낫네."
누나가 바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모처럼 편안해 보였다.
해가 지고, 대망의 저녁 시간. 신문지를 깔고 휴대용 가스버너(부르스타) 위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치이익― 냉동 삼겹살 익어가는 소리가 계곡의 밤을 깨웠다. 기름이 튀고 연기가 났지만, 야외에서 먹는 고기 맛은 그야말로 천하일미였다.
"누나, 한 쌈 해. 아~"
상추에 고기 두 점, 쌈장 듬뿍 찍어 넣어주니 그녀가 오물오물 받아먹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호준아."
"응?"
"나 사실... 이번 달에 진짜 그만두고 싶었거든. 너무 힘들어서."
"......"
"근데 이렇게 나와서 고기 먹고 물소리 들으니까, 다시 버틸 힘이 생긴다. 고맙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했다. 나는 말없이 고기를 더 구워 그녀의 앞접시에 놔주었다. 가진 건 없어도, 그녀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텐트 안 랜턴 불빛은 아늑했다. 1998년의 여름 휴가. 비록 화려한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시원한 계곡물과 삼겹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만으로도 세상 그 누구보다 부러울 것 없는 밤이었다.
작가후기
오늘도 무사히 한편 올라갑니다.
이것들이 꽁냥꽁냥......
작가의 마음을 긁네요.....휴
나도 외롭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