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
장진영,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 『릿터』 27
빗겨 나간 삶. 그러니까 평범하거나 일반적이거나 평균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인생. 이를테면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휴학을 한 후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여러 차례 쓰기를 반복하다가 졸업과 취업 모두 무사히 마치는, 뭐 그런 생애로부터 빗겨 나 있는 사람. 그래서 결혼이나 출산과도 그다지 접점이 없는 누군가. 어쩌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를, 사람들.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의 화자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화자는 0으로 시작하는 고학번 4학년이다. 등록금을 내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면 학교를 다닐 수 없다. 그래서 휴학과 복학을 되풀이하다 어느덧 10년째에 접어들었다. 복학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는 협박 전화를 받고서야 학교에 나타난 화자는 복학계를 내는 그날 다음 학기 휴학을 문의한다. 1.5평 고시원에 살면서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과 클럽 알바를 한다. 그러니 잠을 잘 시간이 없다. 스무 살 이후로 10년 동안 일만 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활은 지지부진하고 삶은 무미건조하다. 흥미로운 것도 재밌는 것도 아쉬운 것도 바라는 것도 없다. 그녀는 다만 잠을 자고 싶을 뿐이다. 168칸으로 된 표 없이, 그러니까 주 7일 24시간을 일일이 쪼개서 깨어있어야 할 필요 없는, 그런 잠 말이다.
복학한 화자에게 학과 조교 유경이 학습 보조 업무를 부탁한다. 이 일을 하면 다음 학기에 장학금이 나온다고 했다. 화자는 그렇게 성미조를 만난다. 미조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선천성이라 소리 내는 방법을 모른다. 푸른색 벨벳 치마를 입고 자수 놓인 레이스 양말에 메리제인 구두를 신고 물결치는 긴 머리카락엔 진주 머리핀이 꽂힌, 파우더리한 향수 냄새가 나는 아이.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서 구몬학습을 하고 거기서 동그라미를 받는 것이 즐거운 어여쁜 아이. 구몬 수학을 100점 맞고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미조 어린이. 복학 첫날 허무와 공허가 들숨날숨처럼 오가는 화자 곁에 그렇게 수다쟁이 "공주님" 미조가 나타났다.
미조는 해가 진 뒤에는 외출을 해 본 적이 없다. '밤계'라는 한갓진 마을에서 태어나 대학 입학 전까지도 길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애였던 화자와 달리, 미조는 안온한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 속에 산다. 학습 보조 업무가 아니었더라면 둘은 만날 일이 없는 사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접점이 있다. 미조도 화자처럼 '정상'이라 할 범주에서 빗겨 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미조는 선천성 청각 장애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비정상'에 속해 있다. 이름 전에 '장애인'으로 먼저 호명되는 삶.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뭐 그런 거 전에, '비장애인'들에게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아는 것으로 여겨지는 듣고 말하기부터가 장벽이 되는 인생.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매 순간 결핍과 결여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래서 화자는 미조에게 끌린 건지도 모른다. 화자도 상실이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와 미조는 "영원히 그들이 되지 못하리라는 예감"(149쪽)을 공유한다. '정상 궤도'로부터 빗겨 나 있는 두 삶은 그렇게 교차점을 갖는다.
서로 다른 세계의 예기치 않은 만남은 단조롭고 메마른 일상에 균열을 만든다. 이 균열은 사소한 동시에 드라마틱하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부지불식간에 도달해버리고 만다. 한 번 시작된 미끄러짐은 멈춰지지 않는다. 제동 장치 없는 이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그것은 의지하지 못했던 습관들을 바꾸게 하고 '너'의 행동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익히게 한다. 일상은 틀어지고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게 한다.
어느새 화자는 발음은 또박또박하게, 대화할 때는 눈보다 입을 더 자주 보게 됐다. 입을 가리고 웃는 버릇을 고쳤고, 눈짓, 고갯짓, 손짓, 발짓 등 몸짓을 말보다 먼저 하게 됐다. 수업 시간에 미조가 남들보다 늦게 웃어서 민망해지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고, 미조가 한 말들을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허밍을 궁금해하는 미조를 위해 화자는 알바로만 들어가던 클럽에 손님으로 입장한다. 클럽에서 콜라와 사이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미조를 위해 화자는 둘 다 시켜주고, 클럽 스툴을 불편해하는 미조를 위해 고시원 한 달 월세와 맞먹는 돈을 내고 테이블을 잡는다. 따지 않은 보드카를 덩그러니 두고서 시끄럽게 조용한 음악 속에서 둘은 그저 서로의 입술을 마주 본다.
그러나 "일반 상식" 속에서 공주님은 왕자님을 만난다. 화자는 왕자님이 아니다. 화자에겐 이름표가 붙을 수 없다. (그래서 작중에 화자의 이름만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세영이란 남학생이 미조를 쫓아다닌다. 화자와 미조 둘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세영은 본래 미조의 학습 보조를 자기가 계속해 왔다며 당당히 화자로부터 미조의 옆자리를 뺏는다. 이세영은 성미조의 목소리를 들은 유일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러니까 신음소리를. 미조와 화자만 빼고, 다 안다. 애초에 화자가 새삼 미조의 학습 보조를 맡게 된 것도 그 음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화자는 미조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세영을 싫어한다는 미조에게 화자는 말한다. 그냥 싫다고 한마디만 하라고. 하지만 미조는 도리어 어려우면 글로 적으라는 화자에게 그 말을 한다. '싫어요.' 그러니 화자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깨끗이 단념하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 둘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의점과 클럽 알바를 그만뒀고 10년 간 미뤄 왔던 잠을 여름 방학 내 잤다. 일을 하지 않아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은 쉽게 굶어 죽지 않았다. 다음 학기에 화자는 등록을 했고 미조는 휴학을 했다.
균열은 흐름을 바꾼다. 미조의 존재가 화자의 쳇바퀴 같은 일상을 정지시킨 것처럼. 변화는 미미하고 눈치채기 어렵게 시작된다. 그렇다 해도 크게 바뀐 건 없다.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졸업 후에는 어찌 살지 알 수 없으며 지금도 가진 것은 없다. 일상을 영위하려면 다시 학교에 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그 전과 같지 않다. 균열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그 흔적을 보면서 바뀐 풍경을 바라본다. 봄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던 나뭇가지가 가을이면 잎사귀 때문에 무거워져 쉽게 잡히듯이. 그래서 화자는 미조가 했던 마지막 말을 다시 읽는다. 어쩌면 '싫어요'가 아니라 '싫어해요'일지도 모른다고.
'싫다'와 '싫어하다'는 다르다. 전자는 자동사고 후자는 타동사다. 타동사는 자동사와 달리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미조의 말을 '싫어요' 자동사로 읽으면 단념으로 끝나지만, '싫어해요' 타동사로 읽으면 목적어의 빈칸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빈칸으로 남은 목적어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미련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또한 용기다. 용기는 언제나 확신이라는 지지대가 없는 곳에서 '너'로부터의 응답을 바라지 않는 태도로부터 솟는다. "소리가 떠난 자리"(149쪽)에서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가 닿을 때까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