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김현미(2023),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봄알람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는 현재 일터의 성차별적 현상을 취업 준비 단계(20대)부터 경력 단절 이후(60대)까지 살펴보고, 젠더 불균형이 실제로 폭력과 차별의 형태로 어떻게 자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진단한 후,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기능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탐색한다. “일터에서 페미니즘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23쪽)라는 물음을 일터를 이루는 개개인을 조명함으로써 다각적으로 접근하며, 이에 대한 분석을 가감 없이 담백하고 명료하게 진술한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해석, 고찰은 일터란 “특정 기업과 대표자의 사유지가 아닌 가치와 지향이 공유, 전수되어야 할 공론장”(21쪽)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일터가 단지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면 노동자는 한낱 소모품일 뿐이다. 최대의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교체되어도 상관없는 부품.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의 주문이 감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능력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최대치로 착취당하고, 이를 통해 이룩한 기업의 이윤은 곧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특히 여성은 성격과 외모, 감정과 능력뿐 아니라 집안과 일터, 돌봄 노동과 임금 노동 등 안과 밖 모든 부분에서 “균형”을 이루어 흠결 없이 완벽한 존재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그리하여 여성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간과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감내하고 쓰러질 때까지 완벽해지려 계속 “노력”한다. “개인의 노력을 통해 젠더 억압이라는 고질적 불평등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83쪽)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한편 이 신자유주의 덕분에 여성은 집안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은 개인화와 능력주의가 여성에게 남성이 주는 종속적 안정성이 아닌 독립과 표류의 가능성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발판으로 삼고 일터로 나아간 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은 자기 능력 너머의 것들, 가령 주입된 “여성성”의 거듭된 재연출과 이 “여성성”의 연행으로 인한 차별과 폭력이다. 여성들은 그 능력만 이용당한 채 남성 중심 헤게모니를 지탱하는 일용품으로 소모될 따름이다. 저자가 수집한 목소리들에 따르면 일터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이렇듯 여전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교묘하고 악랄해졌다.
각자도생이 출발점이었기에 연대는 더욱 요원하고, 디지털 기술과 물질문화의 발전은 개인의 파편화와 세대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 와중 일터의 동료인 젊은 남성들은 또 다른 방식의 피해를 호소한다. 기성세대와 다르다며 선을 긋는 이들도 여성 혐오와 성차별 인지 감수성은 윗세대와 다를 바 없고, 모든 것을 교환과 거래의 차원으로 해석하며 여성 연대를 폄훼한다. 결혼의 자격을 성찰하는 한편 그 기준으로 자신의 경제 능력만 고려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속물로 매도한다. 이런 상황의 일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페미”라면 무고한 남성을 처단하려는 기 센 여자라는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일터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산적한 문제는 그대로고 해결책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일터를 이루는 것은 결국 인간들이다. 개개의 인간들이 침묵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다면, 그저 타이밍을 재며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연대는 시작된다. 흠결 없는 완벽한 파편은 존재하지 않고, 파편들이 자신의 흠결을 서로 맞댐으로써 전체는 그 모습을 갖춘다. 균형은 홀로 맞출 수 없으며 구조의 변화는 우리가 입을 열고 손을 잡을 때 일어난다. 이 자명한 현실 앞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우리가 용기 낼 수 있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