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보면 종종, 원하지도 않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아니, 아예 이해할 수도 없는 입장을 대변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논리를 마치 내가 주장하는 것처럼 써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면 정말 난감하다. 누군가가 이미 내린 결론에 맞춰, 그 결론을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도 그 결론과 같이 생각하면 일은 쉬워지지만 반대라면 마감까지 지독한 시간이 된다. 나는 나를 설득하려 하고, 나는 나에게 설득당하지 않으려 한다. 원하는 일만 골라하면서 돈 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내 생각을 속여야 하는 일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제는 그런 글을 써서 완성된 글을 두고 회의를 하다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세련되게 말하려고 현기증이라고 해봤는데, 사실 구토를 느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꾹꾹 눌러 담느라고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그래도 애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글의 논리가 부자연스러운 데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 애초에 무리한 결론이었다, 소비자들은 속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써도 당위적으로 보이게 된다 등등 다양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회의의 결론은 늘 그러듯, ‘그래도 다시 쓰라’이다. 하아, 내 표정, 제발 찌푸려지지 않았어야 할 텐데.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을 담는 일이다. 나는 한 때 그 일이 구미가 당기고 멋지게 느껴져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처음에는 동화 작가를 꿈꿨다가 그다음에는 블로그에 시를 쓰고, 나중에는 SNS에 일상의 에피소드와 감동을 적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늘 솔직하지 못했다. 솔직히 쓰면 내 글에 누군가 상처 입을까, 또는 누군가의 평가나 의견에 내가 상처 입을까 무서웠다. 자극적인 생각들은 차마 꺼내놓지도 못했다. 내 글은 평범했다. 내 마음은 슬펐다. 나는 죽고 싶은 날에도 죽고 싶다고 쓰지 못하는 새가슴이었다. 일기장도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쓰지 않았다. 글에 마음을 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모전에도 글을 내봤는데, 대개는 떨어졌다. 짧은 글 하나가 어딘가 당선되어 문화상품권 같은 것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디에 무슨 글을 써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아마 마음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한 글을 쓴다. 누군가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글을 완성한다. 종종 나는 이 일을 잘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어차피 글에 진심을 담지 못 한다고 생각하면 울적하다. 그러면 차라리 남의 글 써주기에 마음이 적응되면 좋겠는데, 내 안의 어떤 욕망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나의 글쓰기 경험은 늘 채워지지 못한 상태로 원점이다.
마음을 담은 글쓰기가 가능한가? 죽기 전에 쓰고 싶은 글들이 있다. 사실, 많다. 너무 많아서 지금 시작해야 다 쓰고 죽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쓰지 못했고, 나는 늘 스스로에게 말해온 것처럼, '아마도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아마 이 말은 후회 많은 삶을 살다 가기 위한 내 변명의 미리 보기였나 보다.
시간이 흐른다. 아까운, 아쉬운, 주워 담지 못할, 오늘도 솔직하지 못 할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