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상관없이 프로가 되기 위하여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하교 지도하는 선생님과 보호자를 기다리는 학생들 사이의 대화가 들린다.
"선생니임! 선생님 진짜 몇 살이에요?"
"선생님은...삼백 오십 살이라니까."
젊어 보이는 선생님이 제법 진지하게 답하니 어떤 학생은 뾰로통하고 다른 학생은 놀란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생 때 놀란 얼굴로 집에 와서 선생님 나이를 말해 준 적이 있다.
"우리 선생님 백 살이래!"
"아, 저런."
"진짜야. 선생님이 진짜랬어."
"음, 그래. 와우. 깜짝이야. 진짜 연세가 많으시구나."
당시에는 선생님이 짓궂으시구나 하고 넘겼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연을 듣기 전에는.
"선생님이 나이가 젊으면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학부모들이 있어서 그런 거래요. 학년 초에 애들한테 선생님 나이 알아오라고 시키는 부모들이 있다나."
맙소사. 하긴 어디에나 있다. 회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이든 연차든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 난. 소속 직급 밝혔으니 관계 정립은 충분할 텐데 기어이 묻는다. "그런데요, 몇 년생이세요?"
후배들을 "애들"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애들은 한 명도 없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한 살만 어려도 다 애들이다.
비즈니스에서 생물학적 나이로 상하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나는 팀원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데, 누군가 '그렇게 해서는 팀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팀장이 팀원들을 통제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제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업무량이나 스케줄, 역할 등이 매니지먼트의 영역이다. 그러니 반말을 해야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이상하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나이로 통제권이나 명령권, 간섭권이 주어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아직 상대방의 나이를 확인하고, 본인보다 어리면 잔소리를 좀 해도 된다고 믿는 태도가 문화라는 포장을 두르고 학교에, 일터에 존재한다. '한국식 문화'라는 이름으로. 나는 생물학적 나이로 직장에서 서열을 정하는 것을 'K-문화'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자랑하고 싶은 문화는 아니다.
물론 관계에 나이를 개입시키면 동료나 파트너와 더 빨리 가까워질 때도 있다. 돈독한 관계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런 것까지도 일을 잘하는 요소가 아닐까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로 위아래 따지지 않아도 친해질 수 있고 존중하면서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이로 형님 아우 하다가 서로 불편하게 얽혀버리거나 일처리가 깔끔하게 안 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관계의 효율을 생각해도 나이 확인이 꼭 필수적인 과정은 아니겠다.
함께 일하는 동안 서로를 백 살로, 삼백 오십 살로 생각하면 어떨까. 삼백 오십 만큼 성숙하고, 그만큼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물론 서로 그만큼의 성숙한 책임을 다 하는 관계여야 한다. 프로라면 모두 최소 삼백 오십 살이니까.
2025.04.07
(다른 플랫폼에 동시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