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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정답을 모르지만 정답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있다

조사를 없애지 말고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

by 꽃에서 꽃이 핀다

소비자 조사 결과를 무시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논리는 간결했다.

"스티브 잡스가 무슨 소비자 조사 같은 걸 했겠어?"

혁신은 뛰어난 소비자 의견이 아니라 혁신가의 내적 통찰로부터 나온다, 그런 주장이었다. 소비자들은 스스로의 진짜 니즈를 모른다. 그 니즈를 위한 솔루션은 더욱 모른다.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모차르트가 사람들 의견 물어보고 작곡했겠어?"


훌륭한 혁신은 예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도 한 사람의 공상 속에서 뾰로롱 마법처럼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예술이라면 아무래도 예술가의 놀라운 통찰 이면에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에게도 창작을 위해 외부의 자극과 단서가 필요하다. 혁신가에게도 그렇다.


사실 혁신가에게는 훨씬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예술은 내적, 정신적 목표에 집중하지만 혁신은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꿔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혁신은 작은 변화보다 세상을 뒤집어 놓을 큰 변화를 말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일은 작은 생각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정말 세상을 미래로 '옮겨 놓으려면' 혁신의 방법과 방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혁신은 소비자 조사로부터 출발한다. 설문일 수도 있고, 관찰일 수도 있고, 인터뷰일 수도 있다. 다만 조사 결과가 그대로 혁신의 구성물이 되지는 못 한다. 아직 원료에 가깝다.


소비자 설문이나 인터뷰 무용론은 혁신의 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소비자가 통찰을 잘 정리해서 말해준다면 대부분의 혁신은 고객센터의 전화 통화와 소비자 게시판에서 완성될 것이다. 소비자와의 모든 접점이 혁신의 시작점이기는 하나, 혁신의 도착점은 아니다. 때문에 소비자가 발신한 정보를 해석해야 하고, 그 과정이 통찰이다. 통찰은 계시몽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면 셜록 홈즈의 추론 과정과 비슷하다. 사실을 근거로 추리하고, 추리 끝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진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진리가 세상을 바꾼다.


그래서 모든 리서치에는 분석의 과정이 중요하다. 누가 분석하는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무슨 분석 툴을 활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나무토막이 폐기물이 될 수도, 땔감이 될 수도, 집의 재료가 될 수도, 예술 조각이 될 수도 있는 원리와 같다. 그러므로 소비자 인사이트 조직을 구성한다면 구인 면접에서 '뭘 조사해 봤냐'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 분석해서 해결했냐고 물어보는 편이 낫다.


소비자 조사는 제대로 된 분석을 통해 혁신의 에너지가 된다. 잘하면 혁신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설문조사 통계가 적힌 페이퍼 몇 장을 보고 '역시 소비자 조사로는 해결되는 일이 없어'라고 실망하는 조직이 있다. 그리고 적은 비용이나마 아끼려고 조사를 중단하거나 취소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아무도 소비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대체 '혁신의 소'는 뭘로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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