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걷는 사람에게 세상의 속도가 벅찰 때
주위를 보면 요새 두 가지 대대적인 유행이 있다. 하나는 달리기고, 다른 하나는 글쓰기다. 관심과 참여 수준도 꽤 적극적이어서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도 늘고 책을 내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글쓰기든, 달리기든 도구나 타인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는 종목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삶이 좀 더 본질을 지향하는가 싶어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또한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수신호 같기도 하다. 돈을 내고 뛰는 마라톤 대회가 늘어나고 달리는 모임이 성행하고 비싼 러닝화와 고글이 매출을 갱신한다. 소셜 미디어에는 달리기 예찬과 달리기 인증샷이 이어진다. 읽어주길 바라는 공개 블로그와 자비로 돌리는 책은 유행하는 글쓰기가 개인의 성찰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또 하나의 공허함의 신호로서, 충족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서, 목적보다 수단으로써 달리기와 글쓰기가 유행하고 있는 면이 있다. 물론, 아주 건전하고 바람직한 방식이므로 이 흐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 뜨거운 열기가 아닌, 오랜 시간에 걸친 잔잔한 온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수 있는 부지런함과 용기가 부럽다. 그러니까 이런 글은, 어쩌면 폭발적인 달리기, 글쓰기에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자격지심일 수 있겠다.
최근 일이 바빠서 아침에는 택시에서 일하려고, 밤에는 야근으로 늦어져서 택시를 탔는데 오늘은 좀 걸어야겠다. 남들처럼 힘껏 뛰어가지 못해도 열심히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내게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