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새벽이면 살짝 얼어 가라앉은 찬 공기에 취해
'앞으로는 하고 싶었던 일들 해야지,
하고 싶은 말도 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가야지.'
몸은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로
마음만 잔뜩 솟구쳐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거야.
그런데 하고 싶던 일들이 뭐더라?
막상 뒤져본 내 속은 마치 처음부터 비어있던 상자처럼
뚜껑을 열고도 텅 빈 마음이 믿어지지가 않아.
손을 넣어 휘저어보기도 했어.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도 걸려주길 바라면서.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우리 작은 딸이 가끔 묻는데,
'엄마는 커서, 더 안 크는 사람이 될거야.
엄마는 더 크기 싫어.
앞으로 가는 게 무서워.
가면 갈수록 더 아무 것도 없게 될까봐.'
차마 그렇게 말해줄 수가 없어서,
'크면 엄마는,
더 클 거야 더더 더어.'
그냥 장난처럼 답하고
헤헤 웃었지.
'뭐가 될 거냐구!'
그냥 넘어가주지 않는 아이.
'사실 엄마는 다 컸어 벌써 다 커서
뭔가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되지 못 했나봐 뭔가가 되려 했던 것 같은데
아직 못 됐네?'
장난같은 말투에 솔직한 말을 섞어보는데
'앞으로 되면 되지.'
단호한 표정의 꼬마가 대꾸해, 나랑 비슷한 얼굴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의 이름을 대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내 표정도 이렇게 진심이었을까.
'그렇지, 앞으로 되면 되지.'
얼결에 떨어진 엄마의 대답은 진심이 아니야.
비어버린 상자는 여전히 비어 있고
무리해서 태워버린 연료는 찌꺼기 뿐이지만,
'맞아, 엄마는 사실 아직도 되고 싶은 게 많아.
더더더 크면, 꼭 ...가 될 거야.'
소근소근, 작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하는 약속.
아주 작은 약속 하나 다시,
커다란 빈 상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