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들이 뛰고, 기술이 난다

인류의 대다수가 느린 걸음인 세상에서 발전의 속도에 대하여

by 꽃에서 꽃이 핀다

AI의 발전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뒤따르는 변화도 너무 빠르다. 인간을 능가하는 속도로 '연산'하는 컴퓨터는 인간에게 '편리'를 선물했다. 이제 인간 초월의 속도로 '추론'하는 컴퓨터가 등장해 인간에게 '무위'를 선물하고자 한다.

구글이 최근 발표한 검색의 새 지평에 따르면 이제 검색엔진은 정보를 찾아 나열하거나 단순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에게 개인 맞춤화 된 정보를 판별한다. 이는 AI에이전트가 사용자를 위해 '판단'을 하는 시대의 예고다. '원하는 것을 검색하다'가 아니라 '원할 것 같은 것을' 검색해 주는 상태라면 인간은 스스로 내면의 니즈를 들여다 볼 필요조차 없어진다.


구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검색 후 이어지는 행동, 즉 쇼핑이나 예약 등의 단계까지 AI가 대신한다. "... that can take action for you"(출처 : 구글 블로그) 말 그대로 컴퓨터가 행동까지 대신해 주는 단계다. 이를 위해 앱이나 다른 서비스를 알아볼 필요도 없다.


얼핏 보면 이는 디지털의 지금까지 발전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도 디지털 진화는 인간에게 편의를 선사해 왔다. 그럼에도 요즘의 변화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라는 이름으로 판단의 과정까지 인간을 대신하려는 '권한 이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디지털 발전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마, 지루하거나 복잡한 과정은 디지털이 대신할 테니까'였다면 앞으로의 디지털은 이렇게 말하려는 듯하다. "당신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지루하거나 복잡한 '판단의 과정'도 디지털이 대신할 테니까."


최근 한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가 다음 달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계획에는 인력 구조조정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이번 개편의 배경으로 생성형 AI의 발전을 지목한다. AI 플랫폼의 접근성과 사용성이 높아지고 최근 AI 생성물의 퀄리티까지 발전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카피라이팅이나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발상 등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어왔던 직무들도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보인다. 90만큼 크리에이티브하지만 하루에 시안 하나를 만드는 인간과 60만큼 크리에이티브하지만 하루에 시안 백 개를 만드는 AI 중 누구를 선택할까? 대다수의 경영진은 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 기업은 답을 정했다. 하루 백 개를 쳐내는 AI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크리에이티브함은 여전히 발전 중이다. 숨 막히는 속도로.


기술이 밀어닥친다. 우리는 이 파도를 탈 것이다. 타야만 한다. 점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급류를 정복했다고 해서 파도 꼭대기에서 환호하며 물에 빠져 가라앉는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멈출 것인가? 이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