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쿠팡으로 무중력 의자 주문하는 할아버지
리서치펌 오픈서베이에서 시니어 리포트를 내놨다. 해마다 내는 리포트지만 샘플 범위가 70대까지라는 점이 새삼 반갑다. 나는 오래전부터 시니어 타겟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프로젝트에서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젊은 타겟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밀려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심지어 40대 후반부터 '시니어'라고 통칭하면서 핵심 타겟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장이 'MZ타겟 우선론'에 휘둘려 온 시간, 그 시간을 잃어버린 15년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선 너무 포괄적이다. 여러 기관과 서적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르면 MZ세대의 범위는 최소 20년에서 최장 30년을 넘나든다. (보통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자로 정의) 이는 부모와 자녀를 포함한 범위, 즉 두 세대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개념이라고 하기는 적절하지 않고, '젊은이'라는 말 정도가 적절할 수도 있겠다. 밀레니얼 세대가 30대이며 MZ의 주 구성일 때는 조금 더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질 말이 되어간다. 아니, 한 10년 전부터 정리되었어야 한다. 최근 5년 정도는 M과 Z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확대되었으나 여전히 MZ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일부 시장에서는 어떤 세대도 제대로 연구되고 존중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모그래픽보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타겟 그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지만, 나는 제대로 연구하면 '세대'도 여전히 중요한 시장 기준이라고 본다. 몇 가지 근거를 댈 수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이에 대해서도 써볼 예정이다.
MZ론에 지친 시장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니어타겟 중요론'으로 돌아와 보자. 각종 리포트가 영포티를 주목하자고 주장했던 흐름과는 다르다. 이번에는 진짜 시니어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도 70대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시장 곳곳에서 시니어를 연령 상한선 없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즉, 시니어를 시작하는 나이에 대해서는 각각 판단이 다르지만 끝나는 나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좁다. 바꿔 말하면 시니어로 살아갈 시간은 생애 발전 주기 어느 단계보다 길다. 장기 로열티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금융권으로 보인다. 보다 발 빨랐던 시장을 짚자면 상조 카테고리를 들 수 있으나, 상조 서비스의 특수성에 따른 타겟팅일 뿐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시니어에게 집중하기로 한 시장은 금융일 것이다.
최근 금융권 마케팅의 흐름에는 시니어를 일부 타겟이 아니라 메인 타겟으로 선정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움직임이 보인다. 메이저 금융 기업부터 시니어 자산 관리 서비스에 힘을 쏟는 것은 물론이고,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비금융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B금융그룹의 요양, 실버타운 서비스다. 은행이 실버타운을? 예전이면 의아했을 이 조합은 이제 상당히 말이 된다.
2024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평균 순자산액은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30대 평균보다 66.1% 많다. [출처: 통계청,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779 ] 따라서 금융권이 시니어 비즈니스에 앞서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라 하겠다.
하지만 금융권의 타이밍도 타겟의 준비상태보다는 빠르지 않다. 시장이 MZ타겟에 몰두하고 있던 시절, 디지털라이제이션과 효율화의 파도가 오프라인 매장을 문 닫게 하는 흐름 속에서 시니어들은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에 적응해야 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지 못하고 햄버거 가게에서 그냥 돌아 나왔다더라, 기가 차서 우셨다더라, 누가 휴대폰으로 선물을 보냈는데 받을 수 없었다더라 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 맺힌' 실버들의 스토리는 가까이서도 종종 들렸다.
그렇게 많은 브랜드가 60~70대를 외면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배달앱을 배우고, 쿠팡 쇼핑을 배워 시대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세상이 시니어 세대를 위한 디지털 라이프를 준비시켜주지 않았고 심지어 매우 불친절하게 소외시켰지만, 시니어는 스스로 디지털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주의 동영상을 찍고 공유하며, 은행 앱으로 송금을 하고 세금을 낸다. 덕분에 브랜드들은 젊은 세대를 위해 준비된 디지털 서비스의 비행선들을 시니어 시장을 향해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탑승시키기 위한 유인물을 잔뜩 준비하고서.
시니어 시장을 목표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필요는 또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구나 살아있는 한 언젠가 시니어가 된다.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출산, 육아 시장의 소비자는 줄어가겠지만, 시니어시장은 매년 새로운 소비자가 단체 입장할 시장이다. 세상의 변화에도 소비자 규모가 안정적일 시장. 젊은 세대 소비자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많은 소비재 시장에서 브랜드 간 점유율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좁은 시장이나마 경쟁자를 물리치고 1위로 우뚝 서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니어 시장 개척을 추천한다. 시니어 타겟에 대한 연구에 리소스를 투입하고, 현재 우리 브랜드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접근할 부분이 없는지 예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아기 용품 브랜드든 게임 브랜드든, 시니어 시장으로 확장은 전략을 수립하기 나름이다. 타겟에 대한 통찰과 자기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얼마 전 브랜드의 외래어 남용에 대한 글을 썼는데, 결국 '시니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스스로도 같은 고충을 겪고 있음을 자백한 듯해서 머쓱하다. 그래서 만약 시니어 시장으로의 진출을 고민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시니어를 대신할 타겟 규정어를 만드는 일부터 권하고 싶다. 시니어라는 말을 좋아하는 시니어는 드물기 때문에, 시니어 타겟과 커뮤니케이션하려는 브랜드에게는 다른 '호칭'이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고' 어떻게 불러야 우리 브랜드를 바라봐 주실 것인가. 시니어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규정어 역시, 타겟 연구로부터 나올 것이다.
내 업무에서도 시니어 타겟에 집중해 볼 기회가 조금씩 늘고 있어 반가운 요즘이다.
(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