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먹은 쥐가 손톱주인으로 변한다는 전래동화를 떠올리며
<AI가 대체할 직업 0순위, 의사?>
요즘 내과에 가면 예전이랑 달라진 점이 있다. 촉진과 청진을 잘 안 한다. 대신 문진(問診)이라는, 의사와의 짧은 문답이 진료의 전부다.
AI로 대체되기 쉬운 분야가 있다면 바로 문답만으로 진행되는 직군일 것이다.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는 유통업 고객센터 업무를 보면 대화 응답의 고도화 여부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답답이 AI'와 도돌이표 대화를 나누며 고객이 스트레스를 받든 말든, 자동화와 비용 효율화에 목마른 기업들은 전화번호를 지우고 LLM기반 AI상담사를 도입하고 있다. 집요하게 따져 묻는 고객에게 감정적으로 상처 입을 일도 없고, 똑같은 답변을 백만 번이라도 반복할 수 있으니 '불만 고객 퇴치 효과'도 함께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고객상담은 단순한 문답이니 AI 대체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전문성이 높은 영역은 아직 대체 불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심리상담사 같은 직종이다.
우선 'AI 심리 상담'은 앱으로, 또 챗 GPT 등 상용 LLM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앱스토어를 보면 아직 인간이 개입하는 심리상담 서비스의 다운로드가 많아 보이지만, AI채팅도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용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AI 심리상담의 장점으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가 많다. 상담 내용이 꼼꼼하고, 아무리 수다스럽게 긴 시간 떠들어도(입력) 무료에서 수 천 원의 상담 비용 밖에 안 든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이에 비해 단점은 상담자의 시각 정보(태도, 눈빛, 표정 등)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정도인데, 멀티모달 AI의 시대에 이 단점의 극복은 말 그대로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떨까? 나는 최근 내과 진료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와 몇 분간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뒤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뵌 의사 선생님은 통증에 지친 내 심리적 상태에 대해 딱히 감정적으로 호응해주지 않는 객관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건조한 문답 속에 AI와의 대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 가기 전, 답답한 마음에 AI에게 내 증상을 물어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의 말은 대부분 AI의 답변과 비슷했고, AI의 답변보다 덜 상세했다. 이 한 건의 진료에 있어서, AI와 내과 의사의 차이는 자격증, 그리고 비용이었다.
물론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더 복잡한 증상 앞이라면 AI는 무용지물이 되고 전문성 높은 의사만이 치료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또한 의사의 전문성이란, 똑똑한 사람들도 십 수년의 밤낮 없는 공부와 수련을 통해 쌓아 올려지는 역량인 만큼 AI보다 '진짜 의사'의 진찰이 뛰어나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전에 한 글에서 적었듯, 모든 클라이언트(소비자, 의사에게는 환자)의 눈높이는 같지 않다. AI의 디자인, AI의 리포트가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만하면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늘고 있는 AI로 만들어진 광고들, 특히 AI로 생성한 인간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를 보면 아직도 소름 끼친다.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지 못한 인공의 느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카콜라의 AI광고에서 같은 자동차의 바퀴 개수가 장면마다 다른 점이 비난받은 것처럼, 크고 작은 오류가 눈에 띌 때마다 AI는 아직 한계가 많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광고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그 클라이언트'들은 괜찮은 퀄리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용을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모델비, 촬영비, 녹음비가 제로인데 모델 비슷한 존재가 내 브랜드에 대해 실컷 설명해 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소비자는 퀄리티 낮은 광고라서 화면을 닫아버릴까? 대부분 소비자도 약간의 어색함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으며, 그럴싸한 내용이면 클릭한다.
의사의 문제라면 다를까? 돈을 내는 사람은 비용 대비 퀄리티를 생각한다. 몇 분 진료에 몇 만 원을 청구하는 대학병원과 말 몇 마디에 몇 천 원을 청구하는 우리 동네 내과를 비교한다. 그 말 중 일부는 '잠을 푹 주무세요.', '당분간 무리한 운동은 피하시고요.' 같은 당부의 말이다. 그에 비해 AI의 상담 비용은 거의 무료다. 의사 면허는 없지만, 온라인의 공개된 의학 정보는 모조리 모아 올 수 있다. AI가 일상화되면서 자신의 증상을 AI에게 상담하는 사람은 자연히 늘어갈 것이다. 병원 처방 없이도 일반 의약품을 적당히 추천받을 수 있다.
AI의 발전은 직업의 혁신과 소멸, 두 가지 문의 열쇠다. 어떤 업계든 AI 시대에 혁신의 기회와 소멸 가능성 두 가지 과제를 만나게 된다. 문제는 혁신의 세례가 일부에게만 편중될 가능성이다. 다른 일부는 빠르게 경쟁력을 잃거나 직업 자체를 잃을 것이다. 이전에 선망받던 직업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보고서는 블루컬러보다 화이트컬러가 먼저 AI로 대체되리라는 전망을 내고 있다.
의사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누구든 AI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을 준비가 필요하다. 적극 AI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차별성을 개발하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하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배를 만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 소멸의 파도가 그 파고를 높이며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202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