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by 배정

축축한 감촉에 눈이 떠졌다.

“뭐 하는 거야.”

밀어내도 녀석은 볼을 핥고, 콧등을 비비고, 꼬리를 흔들었다.

새까만 눈망울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시생이 되었다.

그래도 명분은 챙겼다.

‘보란 듯이 잘 살면 돼.’

그거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

어스름한 골목길, 전봇대에 묶인 작은 강아지가 줄을 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깡총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는 오직 둘뿐이었다.

“이제 누나랑 살자. 행복하게 해줄게. 절대 버리지 않을게.”

품에 안은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흰 털뭉치에게 ‘구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침대 옆엔 계단을 놓고, 벽엔 방석을 붙이고, 싱크대엔 간식을 채웠다.

어느새 하루가 녀석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보호자가 되었다.

*

산책 중 낯선 여자가 다가왔다.

“몇 살이에요?”

“두세 살 쯤요.”

그녀는 구름이를 오래 바라보다 떠났다.

며칠 후, 버스 정류장에 붙은 전단지를 보았다.

“구름이를 찾습니다. 말티즈, 수컷, 3세. 2025년 2월 ○일, ○○ 정류장 인근 전봇대에서 실종. 도난 의심. 찾아주시는 분께 사례하겠음”

사진 속 강아지는 지금 내 옆에 있다.

전 남자친구, 한정우.

사내연애는 끝났고, 나는 퇴사했다. 그리고 그의 반려견 구름이는 지금 내가 데리고 있다.

버림받은 내가 그에게도 상실을 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도둑이 될 지경이다.

분노와 두려움, 수치심이 뒤엉켰다.

구름이를 처음 만난 전봇대에 데려가 묶었다.

“잘 살아. 이젠 너 볼 일도 없겠네.”

차가운 마음으로 돌아섰지만, 정류장에 멈춰서는 버스 안 기사님의 시선에 발걸음이 멈췄다.

다시 돌아보니, 구름이는 줄을 끊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를 보자 꼬리를 흔들었다.

품에 안았다. 젖은 콧등이 내 뺨에 닿았다.

‘이제 진짜로, 누나랑 살자. 절대 안 버릴게.’

코끝이 녀석의 콧등에 닿았다.

한 달 후, 정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덕분에 수진이랑 결혼하게 됐어. 구름이, 네가 키워.”

전단지도, 구름이도 결국 그가 꾸민 계산의 일부였다.

복수가 아니라 정리를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구름이가 내 팔을 톡톡 두드리며 기대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제 이 아이의 진짜 보호자가 되었다.



#스마트소설 #반려견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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