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쳐

by 배정

거미 여인이 말했다.

“이 그물이 악몽을 막아줄 거예요.”

아이 방 벽에 드림캐처를 걸며 인디언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드림캐처를 걸어두면 나쁜 꿈은 걸려서 아침햇살에 사라지고, 좋은 꿈만 남는대.”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앙다문 입매가 진지해보였다.

“다섯 살은 혼자 잘 수 있어야 해.”

사실, 어둠이 두려운 건 나였다. 심리적 이유(離乳)가 힘든 건 은서가 아니라 나였다.

대학가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오픈 시간을 앞당겨도 큰 변화는 없었다. 불면증이 깊어졌다.


초인종이 울렸다.

“홈스테이 맞죠?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가 들어섰고, 은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 잘 지내보자.”

그녀가 온 후로 은서의 웃음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아동학과 학생이라는 그녀는 은서와 인형놀이를 하고, 관심사와 TV프로그램을 공유하며 일상을 나누었다. 식사 때는 밥에 반찬을 얹어주고, 젓가락질을 도왔다.

“혼자 하게 둬요. 자립심 키워야죠.”

내 말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 음식이 맛있어서요. 자취만 하다가 집 밥 먹으니까 너무 좋아요.”

그녀는 '이모'가 되었고, 나는 '언니'가 되었다.

은서는 이제 잠들 때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았고,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는 일도 없었다. 9시가 되면 수연이 사준 애착 인형을 안고 씩씩하게 제 방에 들어갔다.

자란 만큼 내 곁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

어느 날, 수연이 물었다.

“언니, 은서랑 둘이 산 지 오래됐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악몽을 꿨다.

굉음, 강의실 책상 너머로 날아드는 오토바이, 비명소리.

잠결에 수연이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잠을 설친 탓에 늦잠을 잤다.

식탁위에 수연이 남긴 메모가 있었다.

‘은서 등원시켰어요. 언니 죽 드세요.’

주인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닫혀있는 수연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책꽂이에 꽂힌 다이어리가 눈에 띄었다. 표지에는 익숙한 대학의 로고가 찍혀있었다.

잠깐 망설이다 다이어리를 꺼내 열었다.

그 속에는 매일의 기록, 은서에 대한 분석이 빼곡했다.

은서의 말투, 행동, 나의 반응, 성향 분석.

‘불안이 심한 엄마. 불안정 애착이 의심되는 아이.’

하단 수퍼바이저란에 서명이 있었다. 이준호.

학생들 대화로 우연히 이름을 알게 된 카페 단골고객. 준형 선배를 닮은 그 남자.

급히 어린이집에 전화했다.

“은서 오늘 안 왔는데요.”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은서 어디 있어!”

“언니, 은서랑 놀이공원이에요. 걱정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들리는 이준호의 말.

택시를 불러 타고 서울 근교 놀이공원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입구에서부터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은서, 단발머리 여자와 검은 테 안경을 낀 남자를 보았는지 물었다. 폐장시간이 되어 관람객이 모두 퇴장한 후에도 은서는 찾지 못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병실에서 깨어났다.

의사가 말했다.

“계속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따님이 사라졌다고.”

경찰이 말했다.

“차준형 씨, 그분 아내 맞죠?”

“차은서. 제 딸이에요, 찾아주세요. 제발!”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떼어도 '차은서'라는 이름은 없었다.


이제야 기억났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감귤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그를 내보냈다.

검은 점퍼를 입혀 어둠 속으로.

사고.

나는 준형을 잃었고, 충격으로 아이도 잃었다.

팔꿈치로 식탁을 내리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잔에 담겨있던 와인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붉은 잔상.

악몽처럼 모든 게 쏟아졌다.

나는 그물 속에 갇혀 있었다. 드림캐처의 그물.

그 어떤 꿈도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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