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할 퇴사라면 이렇게 (2)
얼마 전 어떤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하얀 바탕 가운데에 커다란 노란색 레몬이 그려진 그림이었죠. 왼쪽 상단 코너에는 청량하게 맑은 파란색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WHEN LIFE GIVES YOU A LEMON)”
아, 나 이거 알아.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드세요!’ 맞지? 레몬에 달콤한 설탕을 팍팍 치고 탄산수에 넣어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거잖아. 시큼한 맛의 단점을 상큼한 맛으로 활용하라는 - 뭐 뻔하지만, 좋은 얘기지.
코웃음 치며 시선을 오른쪽 하단 코너로 옮기던 순간이었어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죠. 그곳에는 제가 예상하지 못한 글귀가 쓰여 있었거든요.
“레몬을 먹어 버리세요 (YOU MUST EAT THE LEMON).”
레몬을 먹으라고? 그 아찔할 정도로 신 레몬을 말이야?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보다 더 아래에 보일 듯 깨알 같은 작은 글씨가 보였어요.
“몽땅 다요 그 껍질까지도 (ALL OF IT INCLUDING THE SKIN).”
당신에게 같은 말을 들려 드리려고 해요. 회사가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먹어버리세요. 있는 그대로. 껍질까지요.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현실을 도피하며 레모네이드를 만들 필요 없어요. 있는 그대로 다 씹고, 뜯고, 맛보세요. 씨와 꼭지만 빼고 다 먹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가성비’를 중요시합니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클지, 작을지, 끊임없이 계산해요. 투자보다 돌려받는 것이 적을 것 같은 분야에는 굳이 힘을 쓰지 않습니다. 취업에도, 연애에도, 우정에도, 꿈에도 말이지요.
아마도 그동안 이미 많은 벽에 부딪혀 왔기 때문이겠죠. 노력해 봤자 뭐 해. 실패하느니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지레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마치 낮은 벽 앞에 우뚝 멈춰 선 임팔라처럼요.
임팔라는 3m 높이까지 점프할 수 있대요. 하지만 고작 1m 높이의 벽 앞에 선 임팔라는 점프하기를 주저하죠. 벽 뒤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으니까요.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미지의 두려움에 쉽게 포기하고 마는 거예요.
어렵게 입사 한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눈앞에 작은 벽을 마주치면 오랜 고민 없이 포기합니다. 당장 눈앞에 아웃풋이 얼마나 될지 보이지 않으니까요. 도전했다가 좌절하는 아픔을 피하고 싶은 거죠.
회사는 매일 당신에게 레몬을 투척합니다. 커다란 조직에 속해 있는 당신의 존재감은 때론 자그마한 나사 볼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없어져도 당장 아무도 모를 그런 부품 말이죠. 몇 달, 몇 년을 애쓴 프로젝트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하고요. 기대했던 승진이 누락되기도 하지요. 게으르고 능력 없는 옆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속이 쓰린 날도 있어요.
하지만 회사가 잔뜩 안겨주는 시큼털털한 레몬에서도 분명 얻을 것이 있습니다.
퇴사하기로 결정했다면, 더 열심히 먹어버려요. 회사가 주는 쓸 정도로 신 레몬 말이죠. 와그작와그작, 통째로 다 먹어서 소화시켜 버리는 거예요. 회사가 주는 비타민C 권장량 10000%를 흡수해 버리겠다는 각오로요!
러닝머신 위에 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30분 동안 최고의 스피드로 전력 질주 합니다. 운동을 막 마친 그의 얼굴은 터져나갈 듯 붉게 달아올라 있어요. 티셔츠는 비를 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요.
그 옆에 또 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러닝머신의 고정된 양쪽 지지대에 의자를 올리고, 그 위에 앉아 있었죠. 한 손에는 콜라, 다른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들고 먹으면서요. 무려 3시간 동안 러닝머신 위에 있었지만 그의 심장박동은 평온하답니다.
둘 중 어떤 사람이 러닝머신 위에서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회사라는 러닝머신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직 기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온 힘을 다해서 전력질주하며 땀과 고통을 참아 낸 사람만이 단단한 근육을 얻어 갈 수 있어요.
그러니 회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큼 털털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뱉어내지 말고, 버리지 말고, 피하지 마세요. 남들보다 유독 어려운 회사 생활을 하는 당신, 퇴사를 한 후에는 그 누구보다 멋진 근육을 가지게 될 거랍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사서 고생해 보세요. 버티고, 버티고, 하루만 더 이 악물고 버텨 봅시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이 당신만의 꽃길을 가꾸어 갈 때 필요한 단단한 근육이 되어 줄 테니 말이지요!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힘써 보는 시간. 당신은 그 시간을 버팀으로써 더 단단 해 질 거예요.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당신도 모르게 체득되는 것이 있을 거예요. 업무의 소소한 센스처럼요. 명함을 주고받는 방법, 이메일 제목을 알아보기 쉽게 쓰는 방법, 업무 상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당신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 가는 능력들이죠.
기왕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온 회사,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보세요. 열심히 다녀보세요. 똑같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한다고 모두 똑같은 지식을 얻고 똑같은 점수를 받지 않아요. 똑같은 회사, 똑같은 부서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다고 배우는 것이 다 같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일을 꾸준히 해 보고 성실히 버텨 본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더 잘하게 됩니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달고 마라톤을 연습하다가 무게를 훌훌 벗어던지면 날아갈 듯 도약할 수 있는 것처럼요.
마치 퇴사만 하면 당장 꿈같은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속삭임. SNS 속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한 사탕발림 속아 넘어가지 말자고요. 하루하루 꾸준히 회사에 다니는 것은 충분히 빛나고 값진 일입니다. 그 시간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흡수한다면 언젠가 당신은 레모네이드뿐 아니라 훨씬 다양한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될 거예요. 레몬파운드, 레몬제스트, 레몬머랭파이... 레몬으로 청소하는 법도 배우게 되겠죠.
신맛이 두렵다고 피하지 말아요. 회사에서 도망친다면, 퇴사 후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뿐입니다.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온 대사처럼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도망치지 마세요. 회사라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세요. 조금 더 현명하게 잘 퇴사하기 위한 방법,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려드릴 테니까요!
회사가 주는 레몬 중 가장 먹기 곤욕스러운 것은 무엇인가요?
(1) 상사의 무논리 잔소리
(2) 비전 없는 무한야근
(3) 복잡한 사내 정치세계
(4) 업무에 비해 적은 월급
(5) 기타 당신만이 아는 레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