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할 퇴사라면 이렇게 (4)
이제 진실을 마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회사라는 타이틀은 마치 금속을 얇게 재단하여 온몸을 감싼 판금 갑옷을 닮았어요. 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의 사진을 본 적이 있나요? 갑옷 차림의 그는 아마도 실제 그의 모습보다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멋있게, 조금 더 반짝이는 당당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각종 전투로 인해 생긴 크고 작은 상처, 절뚝거리는 팔다리, 어쩌면 겁에 질린 표정 까지도. 두터운 갑옷으로 곱게 포장되어 감추어져 있었겠죠.
지금까지 당신은 회사라는 갑옷 안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회사라는 갑옷이 미화시켜 주곤 했죠. 단단하고 반짝이는 갑옷 안에 있으면 때로는 조금 멋진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을 거예요. 투구의 창을 닫고 있으면 당신의 신변 역시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었고요.
이 얼마나 멋진 갑옷인가요. “안녕하세요. A 회사에서 B 업무를 맡고 있는 ㅇㅇㅇ C (직급)입니다 “라고 당신을 소개했을 때 당신을 스캔하는 눈빛이 달라지게 만드는 전신갑주. 당연히 멋져야죠. 이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려입은 갑옷 인걸요. 그 갑옷으로 무장하기 위해 무려 20여 년을 치열하게 살아왔는걸요.
그러나 그 선망의 눈빛은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입고 있는 단단한 갑옷을 향한 것이죠.
덜그럭 덜그럭. 이제 회사라는 갑옷을 훌훌 벗어던질 시간입니다. 당신의 적나라한 민낯, 즉 쌩얼을 세상에 당당하게 드러 낼 때가 다가오고 있거든요. 전신갑주를 벗고 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자기소개서를 써 봅시다. 처음부터 다시.
자기소개서를 쓴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요?
성실한 당신은 이미 검색창을 뒤져 자기소개서 양식을 몇 개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네요. 헛고생을 시켜서 미안해요. 자, 회사에 지원할 때 준비했던 표면적인 스펙만을 나열 한 서류는 잠시 옆으로 치워 두세요. 그런 자기소개서로는 진짜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요.
이번에 작성할 자기소개서는 조금 다르답니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아요. 길이도 제약이 없어요. 몇 줄이어도 되고, 몇 권의 책을 써도 된답니다. 글이 아닌 영상이나 그림의 형태 일 수도 있겠지요. 증명사진이요? 당연히 없어도 되지요.
물론 마감 기한도 없어요. 퇴사할 때까지 초안을 완성하면 좋겠지만, 꼭 기간을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이번 자기소개서는 평생을 써내려 가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틈틈이 메모하고, 꺼내 보고, 수정하고 덧붙이면서요.
이번 자기소개서의 수신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자기소개서라는 이름의 러브레터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할 때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한지. 당신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볼 거예요.
정답도 없고 잘못된 답도 없어요. 소소해도 괜찮고 하찮아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된다면 그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퇴사 후 당신은 회사라는 갑옷에서 벗어나게 될 거예요. 처음에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겠죠. 갑옷 안을 자욱하게 채우던 습기와 땀이 공기와 만나는 순간, 이마를 스쳐가는 바람 한 줄기를 느끼는 순간, 당신의 뇌리에는 한 문장이 번개처럼 떠오를 겁니다.
도비… 아니 당신은 자유예요!
갑옷은 창과 칼로부터 전신을 보호해 주는 보호구인 만큼 그 무게가 상당했대요. 평균적인 기사들의 갑옷은 20-30kg, 고급 갑옷은 무려 50-60kg이었다고 하니까요. 어린아이 또는 성인 여성의 무게를 온몸에 이고 지고 다니는 것과 비슷했겠지요. 그렇게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당신은 얼마나 홀가분할까요?
하지만 가벼워진 마음도 잠시. 작은 불안감이 마음속에 똬리를 틉니다. 갑옷 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맨 살을 쪼갤 듯한 찬 바람이 몰아 칩니다. 투구로 인해 막아지던 지독한 악취가 무자비하게 콧속을 파고들지요. 발가 벗겨진 듯한 두려움과 떨림이 순식간에 엄습할 거예요.
회사라는 갑옷을 벗었을 때, 더 이상 당신 목에 달랑거리는 사원증이 없을 때. 회사로도, 업무로도, 직급으로도 당신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그때도 당신은 변함없이 알고 있어야 해요. 당신이 얼마나 용감하고, 멋지고, 속속들이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말이에요. 그것이 바로 당신만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이유랍니다.
임태수작가는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에서 나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개개인 모두 브랜드가 되는 시대. '나는 어떤 브랜드인가? 나다움은 어떤 것인가?'는 우리 세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질문 중 하나. 과거처럼 많은 것을 획일화, 공식화할 수 없는 시대이고, 자꾸 공식화하려 해서도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크고 작은 시도를 하고, 또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시도들이 모여, 브랜드, 나다움이 만들어지니
당신만이 가진 반짝임을 당신만의 형태로 담아 내 보세요. 탐험하듯 스스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더 깊이 연구하고 알아보자고요.
당신을 과일로 비유하자면 무슨 과일인가요? 동물로 표현하자면 어떤 동물일까요? 색깔로, 날씨로, 영화 캐릭터로, 동화 주인공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을 표현하고 정의해 보세요.
음식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어쩌면 당신은 고추냉이 같은 사람 일 수도 있지요. 폭신폭신한 부드러운 녹차 아이스크림 같은 겉모습만 보고 사람들은 당신을 작고 귀엽게만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지요? 무심코 한입 콱 베어 물면 코끝이 얼얼하도록 매섭게 반격할 수 있으니까요.
색으로 표현하자면 당신은 한 여름의 햇살처럼 맑은 초록색 일 수도 있어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반짝임처럼요. 동화 속 캐릭터로 표현하자면 당신은 피터팬 같은 사람 일 수도 있겠죠. 나이와 상관없이 맑고 순수하지만, 무서운 후크 선장 앞에서도 겁먹지 않는 당당함을 가진 그런 사람.
기억하시나요? 두터운 금속판으로 가려졌던 가슴팍에는 펄떡펄떡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었어요. 당신의 취향과 가치관이 그곳에 꽁꽁 숨겨져 있었죠. 회사에 다니는 동안 당신은 취향을 거세당해 왔을 거예요. 회사는 당신의 취향보다는 상사의, 또 그 상사의, 또 그 상사의 취향이 정답으로 여겨지는 곳이니까요. 어느덧 당신은 선택을 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을지 몰라요.
이제 당신의 심장을 꺼내보세요. 처음부터 다시 당신의 취향을 알아가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작고 소소한 일상의 선택부터 시작하면 돼요.
눈을 뜨고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간 당신. 오늘 아침 식사는 계란입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요리 한 계란을 좋아하나요?
계란을 단독으로 요리하는 방법은 10가지가 넘는다고 해요. 흔히 계란 프라이라고 부르는 요리도 노른자가 위로 올라가면 써니사이드업, 노른자가 아래로 가도록 뒤집으면 오버이지, 노른자를 단단하게 삶은 완숙, 반만 익힌 반숙, 호텔 조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크램블 에그와 수란. 맥반석 계란도 있네요!
고작 계란 하나 먹는데 무슨 선택지가 그렇게 많으냐고요? 주는 대로, 차려진 대로 먹으면 되지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냐고요? 선택을 연습하세요. 취향이란 스스로 무엇을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결정에 대한 대답들이 모이고 모여 당신의 취향이 된답니다.
어때요? 당신도 모르던 당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나요?
갑옷을 벗어던지세요. 기꺼이 당신의 맨 얼굴과 맨 몸을 드러내세요. 갑옷의 무게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세상에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거예요. 당신은 분명 걷고 있는데, 옆에서 보면 뛰어가는 것처럼 보이겠죠. 당신은 그대로 충분해요. 충분히 크고, 멋있고, 빛나는 사람이에요.
당신 만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 보세요. 이제, 날아오를 시간입니다.
꽃으로 표현한다면 당신은 어떤 꽃인가요? 무슨 색으로, 어떤 계절에 만개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