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도시 이야기
“왕십리역으로 가주세요”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택시 뒷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금요일의 서울 시내는 오후 중반부터 온갖 도로가 꽉 막힌 주차장이 되기 때문에 이동을 서둘러야 한다.
행선지를 들은 택시기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숙한 솜씨로 차선을 몇 번 옮긴 다음 원효대교를 타고 강변북로 진입로로 차머리를 돌렸다. 여느 금요일보다 차량이 극심한 금요일 오후 3시였지만 기사의 움직임은 비교적 차분하고 정확했다. 마치 어느 타이밍에서 엑셀을 깊숙이 밟아 속도를 내고, 어느 타이밍에서 발을 떼어 브레이크를 살짝 걸쳐야 하는 것을 아는 듯, 마치 오케스트라 콘서트마스터 같은 운전실력에 나는 조용히 감탄했다.
요즘 택시 답지 않게 실내도 굉장히 깔끔했다. 흡연은 전혀 하지 않는 듯 담배 냄새가 없었고, 끽연을 하는 손님이 타더라도 시간을 들여 차를 여러 번 환기한 느낌이 들었다.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이 감도는 차 안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배터리 소리만이 먼 북소리처럼 배경으로 들리고, 실내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리가 가득했다. 처음에 기사가 유튜브 좀 들으면서 가겠습니다,라고 할 때 극성맞은 정치 팟캐스트나 요란한 트로트가 아닐까 살짝 긴장했는데 클래식을 틀기에 내심 놀랐다. 그가 오케스트라 콘서트마스터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배경음악이 없지 않아 영향을 미쳤겠지.
“일본에서는 영업사원이 택시에서 손님을 모시고 영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래서 저도 클래식을 틉니다. 언제 영업사원이 올지 모르니깐요. 하하”
짧은 대화이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거친 택시기사들만 만난 터라 웬만하면 말을 걸어도 잘 섞지 않는데, 목소리 톤이 묘하게 말을 이어가고 싶은 호기심이 일게 한다.
“다른 음악은 안 트시나요?”
“아무래도 가사가 없는 노래가 좀 더 이야기하기 좋죠”
“손님들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세요?”
“돈, 정치, 가족 이야기는 절대 안 하죠. 각자 사정도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순간?
“이를테면 오늘 날씨, 지나가는 건물이나 풍경 이런 거요. 이런 건 영속성이 없거든요. 지금 손님과 같이 보고 지나가니깐요. 나중에 손님이 '그 기사 말이야, 뭔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원'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리도 없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요”
그가 운전하는 니로는 한남대교를 오른쪽으로 지나치고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더니, 한남동의 상징인 언덕 위고급 주택가들을 받치고 있는 다리 아래로 들어갔다. 터널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터널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밝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곧 그 빛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리의 한쪽은 일반 터널처럼 막혀 있지만, 한강을 마주하고 있는 다른 한쪽은 반원 아치 모양으로 거대한 창문을 내고 있었다. 창문은 도로를 따라 연이어 있었는데,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아치 너머로는 연두와 초록 중간색의 새순들이 마치 점묘화 같이 뒤섞여 강바람에 너울대고 있었다. 아치의 둥근 호(弧)를 따라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져 초록빛 차양막 같기도 했다. 담쟁이덩굴과 새순이 돋은 나뭇가지들을 넘어서는 동호대교와 넘실대는 한강과 하늘을 한눈에 보였다. 똑같은 풍경이지만 아치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 마치 다른 그림 같기도 하고, 연속되는 풍경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구조물이지만 세월을 켜켜이 머금은 아치의 콘크리트는 햇살 아래 우뚝 솟아있어, 마치 어느 장인이 세월을 들여 빚어내고 몇백 년 동안 비원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그리스 여신 조각상 같았다. 교통체증으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시속 20km 미만으로 떨어져 차가 서서히 멈춰간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 다리는 두무개 다리예요”
“정말 아름답네요.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드라이브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문난 코스죠. 서빙고길은 신호가 있어서 옆에 강변북로들을 많이 타시지만 저는 이 쪽으로 오는 걸 좋아합니다”
기사는 이제 완전히 정차한 차의 브레이크를 지휘를 마무리하듯 부드럽게 꾹 밟았다.
“88대로와 강변북로를 이어주는 한강의 24개의 다리들만큼 탁 트인 풍경을 선사해주진 않지만, 두무개 다리에서 보는 풍경은 남다른 재미가 있죠. 어두운 터널과 아치형의 바깥 풍경이 묘하게 대조되어, 뭐랄까 서울 같지 않는 느낌을 준다고 할까요”
서울 같지 않은 느낌이라는 표현에 그만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세요?”
“아니요. 5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죠. 택시 운전은 17년 했고요. 서울 시내에서 목적지로 가려면 교통정보방송보다 내 이 머릿속 네비가 훨씬 정확합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신가 봐요?” 운전기사가 백미러 뒤로 슬쩍 보며 물었다.
“아, 티가 나나요?”
“아뇨, 사투리가 전혀 없어요. 얼핏 보면 서울 사람인 줄 알겠어요. 말씀도 단정하시고”
그는 잠깐 적절한 단어를 고르기라도 하는 듯 숨을 멈추고는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차 안에 흐르는 음악은 꽉 막힌 도로 사정도 모르고 이제 클라이맥스로 나가는 듯, 웅장한 심포니 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 모습이 보여요. 도망치고 싶은 모습.”
“......”
“회사도 사람도 어디도 아닌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은 모습이 있어요. 고향이 서울이라 이 도시의 풍경이 숨 쉬듯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죠”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음악을 감상하듯 지긋이 눈을 반쯤 감았다. 여전히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논현역 지나 강남역 쪽으로 내려가는 강남대로를 지나다 보면 큰 스포츠 매장이 보여요. 그 매장에는 항상 강남대로를 지나는 운전자들이 볼 수 있게 커다란 옥외 광고를 달아놔요.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같이 말에요. 며칠 전에 거길 지나는데, 이 러더고요. 서울에서 산다는 건 몇 천배의 힘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숨을 반 뼘 들이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울은 어려운 도시예요. 익숙한 듯하면서도 다음날 다가오는 서늘한 칼날에 마음을 베이기도 하고, 다 두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어찌 알고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면서 교묘하게 치맛자락을 붙잡는 면이 있죠. 더 이상 볼 것도 없을 거 같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에 화려한 불빛 같은 미소로 모든 걸 낯설게 만드는 도시. 그곳이 서울이죠”
운전기사의 말에 대해 생각하다 나는 반쯤 무의식 중에 말했다.
“마치 두무개 다리 풍경처럼”
백미러로 운전기사가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나저나 정말 꽉 막히네요. 이제 두무개 다리는 거의 지났는데, 여기 지나 옥수동까지 가도 풀릴 것 같지 않은데요. 혹시 약속시간까지 많이 급하십니까?”
“네시까지 가야 하는데, 벌써 3시 30분이네요”
“음, 아주 방법이 없진 않아요”
비밀스러운 말을 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백미러 너머 그의 눈빛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묘하게 반짝였다.
“두무개 다리 끝나는 마지막 지점 보이시죠? 저 쪽 코스모스 피어있는데요”
기사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니 두무개 다리가 끝나는 지점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사이로 철 모르고 핀 오렌지색 코스모스 무리가 보였다. 코스모스 밭 사이에 유달리 눈에 띄는 빛바랜 청록색 사다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다리 끝은 다리 아래로 이어져 있는데, 얼마나 깊고 어디로 통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여기 한남동 땅 밑에 광화문 광장만 한 서버실이 있거든요. 중앙 전화 서버 국인데 본래 출입구는 동호대교 근처에 있고, 이쪽은 뭐랄까. 일종의 비상구예요. 가끔 작업복 입고 저 사다리 타고 내려가는 직원들이 보이더라고요. 이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진입하기 어려울 때, 교통관리공사 분들이 종종 이용하는 것도 봤고요”
“그럼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시나요?”
“동호대교 근처니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옥수역이랑 이어지겠죠? 그럼 지하철 타고 왕십리까지는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사님은 이용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는 대답 대신 조용히 액셀을 밟아 엔진을 다시 깨웠다. 여전히 도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두무개 다리 두 칸 정도는 달릴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공간이 비는 데 10분이나 걸린 것이다.
“서울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가장 효율적인 도로는 강변북로와 88대로죠. 반듯하고 정석적인 도시고속도로. 하지만 매번 그 길만 다닌다면 정말 꽉 막혀 있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요. 때로는 신호 없는 도시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 도로도 가봐야 해요. 그래야 아 여긴 일방통행이구나, 아 여긴 비보호인데 더 빨리 갈 수 있구나, 라는 걸 알죠. 일종의 지문을 새기는 거죠.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창문을 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두무개다리는 한 칸 남았다. 빛바랜 청록색 사다리 입구는 이제 육안으로 그 입구가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이르게 찾아온 5월의 더위는 눈부시기보다는 목메이는 비스킷을 입안에 가득 욱여넣은 것 같은 텁텁한 느낌이었다. 다리 안쪽으로 드리운 그림자 사이사이에는 차들로 빽빡하게 메워져 그 그림자가 얼마큼 드리워져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있다.
미터기 요금은 15000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맞는 길로 찾아가시길 바랄게요. 비상구라는 것은, 내려가기 전에 그 모습을 절대 알 수 없지만요”
“말씀 들으니 겁나는데요”
“그런 게 바로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이죠. 몇 천 개의 얼굴 중 하나”
택시 문을 열고 나오니 차들이 내뿜는 후덥지근한 열기와 강바람이 묘하게 뒤섞여 나를 반겨주었다. 차의 양 옆으로 거대한 음료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영업용 모닝 안에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줄담배를 피워대는 영업사원, 낡은 은색 쏘렌토 뒷좌석에서 갑갑한 듯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갓난쟁이 애기와 지친 표정으로 이를 달래는 아이 엄마, 아이와 엄마를 뒤에 둔 채 핸들에 스마트폰을 올려두고 모바일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 아빠, 조수석에 거대한 꽃바구니를 두고 양 손으로 운전대를 초조하게 두드리는 검은 그랜저 운전자. 이들을 차례로 지나칠 때마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두무개 다리의 끝에 도달했다.
사다리를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아래로 내딛었다. 서울의 깊숙한 폐부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도망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나는 어느 쪽일까. 몇 번을 만나도 절대 알 수 없는 서울의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도망가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다. 한 번 이 도시에 남긴 지문은 지울 수가 없다.
본 에피소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1Q84'의 첫 챕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대도시의 느낌을 가장 세련되게 구사하는 작가 중 하나로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도쿄 못지않게 서울 역시 복잡한 도시죠. 화자처럼 저 역시 서울 태생이 아닙니다. 학업과 생계로 서울을 선택해 1n 년 동안 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대도시에 대한 환멸이 있어 생각하여 쉬이 정을 못 붙이는 도시가 서울입니다. 피로와 자기 연민을 반복하게 만드는 도시지만,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풍경으로 쉽사리 떠나게 만들지 못하는 도시도 서울이죠.
두무개 다리는 제가 아끼는, 몇 안 되는 서울의 숨겨진 보석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은근 모르시는 분들도 있어 그 분위기를 한번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방문 추천 시간은 새벽, 혹은 밤 10시입니다. 드라이브와 함께할 추천 BGM은 장철웅 원곡 김필 버전의 '서울 이곳은'
'당신의 도시 A Tale of Your City'는 서울 및 수도권 곳곳을 배경으로 하는 시티팝 소설입니다. 도시 안에서도 특정 지명-시청, 여의도, 삼성, 판교 등-을 중심으로 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엮어보려 합니다. 시티팝 소설은 어디 있는 유명한 장르는 아니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시티팝에 단순히 소설을 더하기 했습니다. 때로는 퇴근길 차들로 꽉 막힌 늦여름 퇴근길 강남대로의 들척한 바람 같은, 때로는 마포대교 너머로 보이는 바닐라 스카이 같은 여러 도시 군상들을 글로 그려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