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 <단편소설> 그 겨울, 열아홉 2

by 해야블라썸

엘리베이터 안의 훈훈한 공기가 나를 감싸자 그제야 남친의 따뜻한 손이 의식되어, 조심스레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내 손이 힘없이 풀리자 미처 손을 놓지 못한 남친의 눈이 동그래진다. 눈동자에는 갑자기 왜 그러지라는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마음을 고쳐먹고 보충수업 받기로 마음을 바꾼 건지 묻는 듯도 하다.


"벌써 손잡기엔 좀 ..."

볼이 발그레해지며, 말을 끝까지 매듭짓지 못했다. 내가 상상했던 연애에는 손끝의 터치만으로도 전율을 느끼는 무언의 티키타카 과정을 거쳐 그 전율에 익숙해질 때 그다음 단계가 손잡기였다. 그런데, 무언의 티키타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렇게 손 잡았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으면서, 뭔가를 하나 건너뛰고 급작스럽게 진행된 전개가 두려워 손을 슬그머니 놓은 것이었다.


한숨을 돌린 남친이 자세를 바꿔 나와 마주한다. 부끄러워하는 나를 바라보며, 남친은 씨익 미소 짓는다. 약간은 장난끼가 섞인 미소다. 그러더니, 벽에 기대어 선 내 어깨 위쪽, 두 손으로 벽을 짚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 안이라 남친의 갑작스러운 자세 바꿈에 너무 긴장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하하하" 남친이 웃음을 터뜨렸다.

"뭘 상상하는 거야, 너? 네가 긴장하니까 나까지 긴장되잖어. 하하. 여기 한번 손대 봐"

남친이 내 손목을 끌어 자기 가슴에 갖다 댄다. 두툼한 니트와 티셔츠 밑 살결이 만져지는 듯 심장의 힘찬 박동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정말 심장 박동이 나보다 더 요란하다. 의외다. 여유만만해 보이는 미소뒤에 감춰진 엇박의 심장 박동. 이 심장을 느끼지 못했으면 남친을 선수로 오해할 뻔 했다. 심장 박동을 느꼈으니 이제 손을 떼고 싶은 데, 남친이 내 손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하아~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안이 원래 이렇게 더웠나?


그 찰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설레였던 마음을 감추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와 교문을 향한다. 한 박자 늦게 출발한 남친의 발걸음은 반은 뛰며 따라붙는다. 그렇게 말없이 운동장을 통과하여 교문을 빠져나왔다.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나? 이젠 같이 가."

내 어깨랑 닿을락 말락 거리를 유지하며, 보폭을 맞춘다. 점잖고, 젠틀하기만 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심쿵할만한 대담한 장난에 긴장한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사실 그게 또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설레었던 마음을 벌써 들키기는 싫었다. 조금은 도도하고, 고고하게 보이고 싶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처럼.


애써 덤덤하게 걸으려 노력한다. 가방이라도 메고 있었다면, 두 손은 어깨에 매여진 두 끈을 하나씩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방도 없다. 두 손은 갈 곳을 잃어 뻘쭘하다. 쓸데없이 어깨 뒤로 넘겨진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검지 손가락에 둘둘 말아본다. 그러다, 금방 풀린다. 둘 데 없는 두 손은 교복 치마 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연주곡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방황하는 내 손을 발견한 남친이 내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고는 웃다가 정면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한두 발짝 앞서 걸어 나간다. 열댓 걸음 차이가 날 정도의 거리가 생기자,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린다. 오른손을 쭈욱 뻗은 채로 얼굴은 왼쪽을 향해 바라보면서. 마치, 기대는 않겠다는 몸짓이다. 하지만, 내가 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열댓 걸음의 간격을 메워 가며, 내 머릿속은 만감이 교차한다. 이 정도면 무언의 티키타카가 수백 번 오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다음 과정이 무엇인지도 이제는 빤히 안다. 오늘 이 시간이 나와 남친에게 어떤 시간인지도 잘 안다. 분명, 고3 첫 보충수업을 대신할 만큼 값진 시간이어야 함을 그 가치도 잘 안다. 서툴지만 첫 데이트이기에 평생 기억될 시간인 것도 잘 안다. 한 공간에 둘만 있어도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떨리는 우리 사이에 관계의 거리를 재며, 언제 어떻게 진도가 나가야 될지 타이밍을 따지며, 손 잡을지 말지 고민할 시간이 없음도 잘 안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 잊고 행복하자. 너나 나나.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남. 았. 다.


남친 옆에 다가서며, 내 손도 뻗는다. 나를 기다리느라 잠시 무안했을 남친의 손을 가볍게 터치한다. 기다리게 했음이 미안하다는 의미이다. 남친이 알아차렸다. 손을 더없이 세게 꼬옥 잡아준다. 그러고는, 이내 곧, 서로 그러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둘은 손을 펴서 서로 깍지를 낀다. 오늘 하루는 이 깍지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이미지 출처<드라마:여신강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