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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r 04. 2023

우리 이제 그만 할까?

- #1. 토요일, 저녁 7시

토요일 밤 8시.

대학가는 활력이 넘쳤다. 수많은 식당과 카페와 유흥 시설들의 네온사인이 서로 호객 행위라도 하는 듯 번쩍이고 있었다.


연희는 대학교 내 교양강의동 건물을 맴돌다 점점 매서워지는 찬바람에 몸을 녹일 따뜻한 곳을 찾아 대학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도, 카페 창가에 앉은 손님들의 얼굴 속에도 모두 환한 미소로 주말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낯선 이들이지만, 모두가 함께 할 사람이 있었고, 함께하는 이들과 오손도손 정다워 보였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주말 저녁의 풍경이지만, 연희에겐 결코 익숙하지 않은 풍경 같았다.


연희는 평범한 주말과는 거리라도 둘 듯, 손님이 별로 없는 한적한 카페를 찾아다녔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면서. 분명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전화 한 통, 아니 문자라도 하나 올 듯한데, 아무런 울림도 없는 폰을 들고서, 수많은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서서 선뜻 카페 하나 선택하지 못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오로지 구두발굽의 외로운 울림만 연희와 함께 걷고 있었다.


더 이상 카페가 보이지 않는 길 끝에 이르렀다. 다시 몸을 돌려,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제일 한적한 듯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벤티 사이즈나 됨직한 커다란 커피를 받아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한 모금씩 홀짝 거리면서 이 커피를 다 먹도록 연락이 없다면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듯, 토요일 저녁이면 그를 기다리는 연희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아직도 연희 맘 속에는 술만 취하면 전화하는, 연희를 버리고 딴 여자랑 결혼해 버린, 1년도 더 지나버린 옛사랑의 남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연희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 옛사랑이 아니었다.  


그 옛사랑을 잊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뭐라 대꾸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기만 한 그런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어쩌면 그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도 연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특별하게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토요일 저녁 7시는 서로를 위해 비워두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약속된 시간보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지난 것이었다. 연희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1년이 넘도록 별 진전 없는 그들 관계에 이제 그도 지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페에 들어온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선우에게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 집에 들어갔어?


"아니, 학교 앞 '작은 공간'이야."


- 나, 방금 주차했어. 이 쪽으로 올래? 아님, 내가 갈까?


"나 여기 있을래."


그렇게, 선우는 헐레벌떡 단숨에 뛰어왔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연희에게 배가 고프다고 했다.


"여태, 밥도 안 먹고 뭐한 거야?"


"아~, 교감 선생님께서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약속을 잡아 놓으셔서, 급소개팅...."


"......"


"그래도 너 기특하네. 집에 갔을 줄 알았는데..."


"어, 이제 갈려고."


소개팅하고 왔다는 선우의 말에, 2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해져서,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말고, 얼굴 본 김에 밥 좀 사주고 가. 사실 지갑도 두고 나와서, 소개팅녀에게 쪽팔리게 커피도 얻어먹었어. 그것도 너 기다릴까봐 벌컥벌컥 원샷까지 했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선우를 보니, 연희는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소개팅한 것이 괘씸한 거지, 선우를 미워할 처지는 안 되니까...


실은, 연희도 그를 기다리느라 밥을 못 먹긴 매한가지였다. 둘은 커피숍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을 시켰다. 말없이 조용히 밥을 먹다 말고 뜬금없이, 연희는 그를 기다리면서 몇 번이나 삼키고 있던 그 말을 뱉고 말았다.  


"우리 이제 그만 할까?"


놀란 듯, 동그래졌던 선우의 눈이 새우눈이 되어 연희의 진심을 살피는 듯 연희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연희가 밥술을 몇술 뜨자, 선우도 뒤따라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러고선, 빠른 속도로 공기밥 한그릇을 뚝딱 비운 후, 나즈막히 힘 빠진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 안 나오면, 그렇게 알게."


"......"


"오늘 밥은 잘 먹었어. 고마워."


연희는 붙잡는 시늉도, 아쉬워하는 기색도 하나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선우가 소개팅하고 왔다고 했을 때보다 더 미웠다. 아니, 차라리 마음이 잘 정리되었다.


'그래. 우린 이렇게 가벼운 사이인 건데, 나는 왜 그를 만나고 있었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소개팅녀가 잠시 미웠을까? 설마, 가볍다고 생각되었던 우리 관계에 나는 조금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나?'


어쨌거나, 연희는 선우의 대답을 듣고 나니 다시 마음이 가벼워졌다.


말을 끝낸 선우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밖으로 나가버린 후였다.


'그래. 이제 토요일 7시 약속은 없는 거야. 서로 안보면 그렇게 끝나는 거지, 뭐. 어차피, 사랑한 것도 아닌데...'


연희도 일순간 망가졌던 멘탈을 천천히 회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덤덤히 밥값을 계산하고 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릴 듯했던 선우는 식당 문 앞에서 왔다갔다 서성이고 있었다.   


연희가 식당의 문을 열고 나오자, 선우는 덥썩 연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연희의 가녀린 몸뚱이는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선우 쪽으로 기우뚱했다. 연희는 이렇게 세게 붙드는 그의 마음을 몰라서 그를 쳐다봤다. 선우는 그제서야, 뭔가 잘못됨을 깨달은 듯 힘줬던 손에 힘을 빼고 살그머니 연희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미안. 오늘 너의 말이 내게 조금은 갑작스러워서...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지금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봐..."


둘의 관계에도 끝이 있을 거라는 것을 선우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듯 보였다. 언젠가부터 당연시되던 관계이기에 그만하자는 말의 타격감은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듯 묵직한 한방이였다. 선우의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는 말에 연희는 1년도 지나버린 둘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첫번째 소설을 재밌있게 읽으셨다는 고마나 작가님의 응원에, 얼릉 소설 내 놓으라는 공삼빠 작가님의 으름장에, 모든 글은 꽃이라는 야초툰 작가님의 격려에, 제 소설을 기다리신다는 캐리소 작가님의 기대에 용기를 내어 발행해봅니다. 그 외 제 글을 읽어주시는 꽃보다 아름다우신 모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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