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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r 22. 2023

지난 사랑을 잊게 하는 위로

#6. 토요일, 저녁 7시

토요일, 오후 7시 10분전.


늘 정해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는 선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도착하여, 그녀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두 번째 만남이지만, 새로운 첫만남처럼 기다리는 동안 선우의 심장 박동 소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크게 들렸다.


선우는 양손을 머리에 얹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감을 조절하고 있었다.


똑. 똑.

가을색 물씬 풍기는 원피스 위에 트렌치 코트를 걸친 연희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선우는 창문을 내려 얼굴을 조수석 쪽으로 기울이며 연희에게 눈맞춰 인사를 했다.


"안녕, 연희씨?"


선우와 눈이 마주치자 연희는 문을 열고 자연스레 조수석에 앉았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뭐~ 그럭저럭요. 연희씨는 요?


"저도 그럭저럭요."


"아! 뭐에요? 연희씨. 지금 앵무새놀이 하는 거 아니죠? 하하"


연희는 조용히 입꼬리만 올린 채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연희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오늘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요?"


"오늘은 제 모교 구경해 보실래요?"


"언제적 모교요? 초, 중, 고, 대 중에서 어딘가요?"


"대학교요. 집에서도 멀지 않고, 뭐든 둘이서 할 만한 게 많을 거 같아요."


"좋아요. 오늘 연희씨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네. 그럼, 출발~"


연희의 목소리는 힘없이 쳐졌다. 슬픈 사슴같은 눈동자를 한 연희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은 연희가 하자는 대로 선우는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선우 자신이였다는 것이 괜시리 뿌듯했다.


"여기서, 직진하시다가 첫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 하시면 되요."


"아! 사실 저도 여기 학교 나왔습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선우씨에 대해 모르는 게 많네요."


"그런 셈이죠. 앞으로 좀 놀라실 일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놀랄 일? 뭔지는 몰라도 나쁜 쪽으로만 아니면 되요."


"하하. 나쁜 쪽으로는 전혀. 네버. 네버. 네버!"


학교에 도착하자, 정문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할려고 했다.


"저~기, 선우씨?"


"네?"


"여기 말고, 교양강의동 아시죠? 그 쪽에 주차하시면 어떨까요?"


"뭐, 연희씨가 원하신다면... 대신, 정문까지 많이 걸어야된다고, 저 욕하시면 안 됩니다."


"네. 고마워요."


다시 정문 주차장을 벗어나와, 건물 뒤편으로 공원처럼 숲이 펼쳐져 있는 교양강의동 뒤편에 주차를 했다.


"여긴 저기 담벼락 쪽으로 붙여서 정면 주차해야 해요."


"그렇겠네요. 나무가 많아서..."


선우는 강의동 건물에 정면주차를 한 뒤, 시동을 껐다. 그런데, 연희는 안전벨트를 푼 뒤,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안전벨트를 풀던 선우는 놀라서,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는 눈을 감고 그런 선우의 반응을 모른 척했다. 선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그런 연희를 포기라도 한 듯, 선우도 의자를 뒤로 젖혔다.


어색한 침묵이 둘을 감싸자 선우는 음악을 켰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듣기에 어울리는 애절한 발라드였다. 그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연희는 아스라히 지난 사랑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 사랑을 완전히 떠나보내야 됨을 인지했다.


심장을 콕콕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선우가 알아차리기라도 할까 봐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지나간 아픈 사랑을 잊게 할 약이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 약이 없다면 선우도 다 들릴만큼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연희는 선우에게 가엾고 여릿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쪽한테... 한 가지... 부탁해도 돼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요."


"지난번 우리 헤어질 때 했던 거... 그거 한번 다시 할 수 있을까요?"


"네~에?"


선우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연희를 쳐다보았다. 연희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 눕다시피 한 상태에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저를 욕해도 좋은데요. 지금, 그것만이 위로가 될 거 같아서요."


선우는 어이가 없어서 연희를 다시 한번 멀뚱이 쳐다보았지만, 눈을 감고 있음에도 연희의 얼굴에서 슬픔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


선우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그 것을 물을 자격이나 되는 사이인지도 몰라 의문을 삼키고 있었다. 곱디고운 5월의 햇살같던 그녀가 왜 선우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본능적으로 만든 건지 잠깐의 순간에 만가지 생각을 했다.


선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 누운채,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해야할 지 몰라서, 지금 이 상황이, 지금 선우 자신의 생각이 정리가 안 되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녀가 지금 이렇게 간절히 두려움없이 원한다 하더라도 또 한번 후회될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우가 생각에 머물러 행동치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 입술을 포개었다. 분명, 그녀를 밀쳐내야 되는 데, 입 속에 느껴지는 짠맛. 그 것은 분명 눈물이었다.


그 짠맛 때문에, 선우는 그녀를 조용히 허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음악 따라 흐르던 연희의 눈물은 이내 멈췄고, 선우의 위로는 앱에 담아 둔 노래가 한, 두시간 분량의 전체 재생이 끝나고서야 멈췄다.


"연희 씨, 배 고프지 않아요?"


"아~, 네."


그제서야, 그 둘은 대학가를 누비며, 밥을 먹고 길을 걸었다.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며 어색하게 길을 걸었다. 말없이 조용히 걷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다정함으로 서로의 곁을 맴돌았다. 


특히, 기준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있는 연희. 그런 그녀에게는 선우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안심이 되고,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선우는 어느새 연희의 지난 사랑을 잊게 하는 위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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