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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Mar 24. 2023

사랑의 순서

#7. 토요일, 저녁 7시

연희를 두 번째로 만나고 온 다음날 아침.

선우는 여느 일요일처럼 오늘도 6시에 일어났다. 테니스 동호회에 참석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그녀를 한번 더 만났고, 은밀한 순간도 공유했지만 뭔가 후련하지 않고 찜찜했다.


후배에게서 얼핏 들은 그녀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녀의 모든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썸 타기는커녕, 뭔가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순서에 맘이 편치 않았다.


"왔냐?"


"......"


부지런한 동희 형은 늘 1등으로 코트에 도착하는 동호회 멤버였다.


"아침부터 뭘 그리 진지해?"


선우의 얼굴표정만 봐도 생각을 다 읽어버리는 동희는, 그에게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대숲 역할을 해주는 선배였다. 차가워진 날씨에 도착이 늦어지는 회원들을 기다리며 선우가 입을 열었다.


"형, 내게 관심 없는 여자가 내게 먼저 키..이스 할 수도 있어?"


선우는 수줍은 듯 키스라는 단어에 말을 더듬으며 동희에게 물었다.


"꽃뱀이면 가능! 꽃뱀한테 걸렸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어? 누가 생긴 거야? 썸이라도 타는 중?"   


"아니, 전혀 그런 과정이 하나도 없어서..."


"이거 이거, 얼굴은 반반한데, 눈치가 없는 거 아냐?"


"아~, 전혀 그런 거 아니래두."


"그걸 니가 어찌 알어?"


"아~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 개인적으로는 이제 겨우 두 번밖에 안 만난..."


"뭐~어? 니가 엄청 맘에 들었겠지. 여자가 적극적인 성격?"


"그런 것도 아니고... 여튼, 썸 타는 과정도 없이 바로 직진이라 불안하네."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 봐... 순진한 놈.  사랑이란 게 마음으로만 하는 것 같아도, 몸으로 하는 사랑도 있다. 사람 따라 분위기 따라 몸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그런 거지. 정해진 순서란 게 어딨냐? 세상 일이 어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되는 게 있어? 이놈 좀 컸는 줄 알았더니, 아직 한참 더 커야겠네."


순서가 없다는 동희의 말이 선우에게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연희에게 선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이런 만남이라도 계속하다 보면, 사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만남처럼, 점심때가 되도록 연희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연희의 눈물 맛을 보았기에 선우는 지금 그녀가 괜찮은 지 첫 번째 만남 이후보다 조금 더 신경 쓰이기도 했다. 정녕, 그가 건넨 위로가 연희에게 위로가 된 것인 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될지 선우는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문제는 그녀가 정답인데...'


답은 모두 연희가 알고 있지만, 대체 자기는 연희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어,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의 SNS를 들여다봤다.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사진 하나가 새롭게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사진과 함께 #잘가~#미련도 없이#완전히 날아가버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필히, 어제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 게 맞다는 확신을 했다.


오늘도 당장 만나 곁에서 진심 어린 말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인 그는 선뜻 위로를 먼저 건네지 못하고 침묵했다. 대신, 장난스러운 댓글만 하나 남겼다.


- 혹시 이거, 저한테 하는 말은 아니죠?


띠링~

- ㅎㅎㅎㅎ. 잘 생각해 보세요. 모르시면, 출제자 찬스도 있습니다.


진짜 웃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댓글 속에서는, 그녀가 웃고 있었다. 출제자 찬스라니? 그녀에게 물어보라는 말인가? 선우는 당장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렀다.


동희의 말처럼, 몸부터 반응하여 시작되는 사랑도 있을 것이라고 선우는 믿고 싶었다. 지금은 그에게 마음 곁을 주지 않는 연희이지만, 둘의 관계가 사랑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끈이든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녀가 그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면, 선우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감내하고서라도 얼마든지 이용토록 허락하리라 다짐을 했다.


아이들의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에, 드디어 선우 사랑고사도 끝이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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