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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Sep 17. 2022

브런치에서의 조용한 퇴사?

- 한동안 글쓰기를 잊은 나를 위한 글...다시 쓸려니 정말 어렵습니다.

최근 간간이 인터넷 뉴스에서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이 오르내렸다. 실제로 퇴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업무 시간에만 일하며 뛰어난 업무 성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도 않는 노동 방식, 즉, 직장 내 업무 성과에 연연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적당히 해야 할 일만 하며 개인적인 생활에 더 집중하자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 말이 브런치에도 적용 가능한 말인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내가 브런치에서 '조용한 퇴사'를 한 듯한 행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런치를 탈퇴한 것은 아니지만, 이 브런치 내에서의 어떠한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기에 적당히 글을 쓰다가 이제는 개인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내 생활의 일부를 할애하여 글 쓸 시간조차 내지 않으면서, 간간히 구독 신청한 글이 올라오면 읽고 라이킷만 할 뿐 도통 어떤 글이라도 쓸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쯤이면 나도 브런치에서 조용한 퇴사를 한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변명을 좀 하자면, 글로써 희로애락을 느끼는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글을 쓰다 브런치에 입문한 지 한 달쯤 될 무렵,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코로나로 사나흘 꼼짝없이 아프고는 서서히 회복되자 코로나로 아픈 그 며칠 발행 못 한 글들을 열심히 퇴고를 반복하고서 발행을 했다. 그러고는 복귀한 회사생활, 일주일간 격리 끝에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브런치를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구독한 작가님의 글이 간간히 올라올 때만 짬짬이 알림 따라 들어가서 읽을 뿐이었다. 그런 며칠이 지난 후,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편안한 만남을 가지며 그렇게 또 사나흘이 훌쩍 지나갔다. 


이쯤 되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브런치를 드문드문 바라보게 되었다. 한동안 습관처럼 바라보던 통계 속 조회수도, 그 조회수가 한자리가 되는 것을 지켜보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도 서서히 잊게 되었다. 조회수가 이 정도이면 뭐라도 글을 하나 써야 되는 데 하며 스스로를 갈구던 글쓰기마저 잊게 되었다. 역시 난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 상태를 지닌 진정한 아마추어였다. 브런치니까 작가라고 불러주지 어디에서도 감히 쉽게 작가라고 칭할 수 없는 수준의 글쓰기 실력인 건 알고 있다만, 실제로 더 실망스러운 건 글쓰기 근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흔히들 잘 알고 있는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이라는 것을 아무나 해 내는 것은 아니며, 그걸 해내는 사람은 진짜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1만 시간이라는 것은 대략 하루에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을 연습한 것과도 같다고 하니 말이다.(하루 세 시간, 일주일 스무 시간은 쉽게 느껴지는 데, 이걸 10년씩이나 한다는 것은 평생 먹고 살기가 걸린 취직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10년씩이나 하기 힘든 만큼, 초월적 열정이 없으면 보통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하루에 3시간이 안 되면, 일주일 하루 몰아서 스무 시간이라도, 최소 1년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길 바랬는데, 글쓰기 근력보다도 나의 끈기가, 나의 인내가 그 이상을 버티지 못함이 많이 실망스럽다. 차라리 통계를 기웃거리며 조회수가 줄어들면 내가 사라지는 듯한 초조함을 가지고서라도 글쓰기 위해 달려드는 내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고작 작가 입문한 지 한 달이 되고서 그런 초조함을 잃어버린 나의 의지박약한 모습에 또 한 번 실망스럽다.


비록, 전문적인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일기를 쓰며, 일기 아니면 자주 종종 에세이를 쓰면서 날마다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작가님들의 글에서 느꼈던 내공 깊은 그들만의 사색. 순간순간 느끼는 마음의 결을 켜켜이 세세하게 풀어놓는 필력. 어른 다움이 인격으로 묻어나는 생각의 깊이들. 그 깊이 속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인생을 바라보는 따쓰한 시선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위로. 그런 것들에 감탄하며 나도 그 정도 생각의 깊이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감동을 그새 잊고서 브런치를 마음 한구석 저쪽으로 멀찌기 밀어놓은 꼴이라니, 나란 인간은 참 깊이가 없어서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 


글쓰기를 쉬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무엇이라도 쓸만한 글감 하나라도 있었을 텐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는 평화로웠노라, 즐거웠노라, 이만하면 행복하노라 하면서 내 감정들을 세세히 살피지 못하여 생각의 깊이에 성장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한 상태. 괜찮은 평범한 어른인 척하느라 명절에 만난 다양한 관계들과의 희로애락을 글로 풀어내지 못해 마음속에 오해가 되어 남은 미움을 묻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함에 미안함을 묻고,  내 맘을 몰라주는 그들에 대한 원망만을 마음에 묻은 채, 글로써 마음을 풀고 정리를 해 봤어야 할 관계들을 꼭꼭 숨겨버려 또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로 남은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 행복했으면 행복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즐거우면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즐겁고 유쾌한 글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픔에도 일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글감을 찾기 위한 아무런 노력이 없었음이 또한 실망스럽다.


20대까지만 해도, 일의 앞뒤를 정확하게 가려서 명확하게 그 결과를 도출해내는 듯한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던 거 같은데, 모진 세월에 깎이고 깎인 지금은 둥글둥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 뭔가 하나 똑 부러지게 해내지 못하는 성격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부터 세상에 "반드시"라는 것은 없다고 믿는 내 나름의 철학이 나를 둥글둥글하게 변화시켰는 데, 그러다 보니 야무지게 끝맺음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반드시 내가 글을 써야만 할 이유도 없고, 반드시 내가 글로써 뭔가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내가 글로써 성공해야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어서, '반드시', '꼭'에 대한 그 어떤 이유도 동기도 찾지 못하여 조용히 게을러지고 있는 순간이다. 아니, 나이 들어갈수록 '반드시'라는 이유 붙이기를 잠재적으로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이래서는 진짜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은 게 민망해질 때가 올 것 같다. 아니면, 주변에 글 쓴다고 알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민망함이 힘겨움으로 바뀐다면 그 지점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뭔가 하나 똑 부러지게 매듭짓지 못한 내 성격에 또 한 번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실망하고 끝내기보다는 한번 더 기회를 줘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 브런치에 뜸했던 나 자신 스스로에게 주는 벌로써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잔뜩 느끼고 있었을 지라도 다시 부지런한 작가가 되기 위하여.. 


주제가 없는 글이라도 다시 부지런을 내어보자. 나 자신을 성숙시키려는 목적에 최우선을 두고서.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단지 내 스스로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 글쓰기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시간. 물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을 터지만, 읽는 것만으로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쓰기 근력이 붙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 지금 무슨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라도 글을 써보자. 1만 시간의 훈련이 끝나면, 지금은 횡설수설로 끝나버리는 글조차도 훌륭한 하나의 글이 되는 경지에 오를 것임을 믿고서... 수많은 글쓰기 강사님들과 유명한 작가님들이 강조한 꾸준한 글쓰기의 힘을 믿어보자. 꾸준한 글쓰기 끝에 오랜 시간 사골을 우리면 우려 나오는 깊은 글쓰기 맛을 맛보게 될 날을 상상하며, 오늘의 횡설수설을 참으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근데, 안 쓰다 쓰려니 이만큼 글 쓰는 것도 진짜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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