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의 언어발달에 개입해야겠다 마음먹은 때부터 언어치료를 시작하기까지 4개월이 걸렸습니다. 대학병원 진료와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은 이후에 언어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그 4개월의 시간 동안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언어발달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언어치료를 받기 전 아이의 말 표현을 늘리기 위한 저의 노력에 대해 소개하려고 해요.
아이마다 말이 느린 정도에 차이가 있고, 말하는 것뿐 아니라 이해하는 정도와 사회성 발달 정도, 대근육 발달 차이도 크죠. 좋아하는 놀이와 성격 기질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어려웠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콕 집을 수 없으니까요.
우리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려면 먼저 우리 아이가 어떤지 관찰을 해 보아야 해요.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놀이를 이끌어가는 수준은 어떤지, 놀이하면서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엄마·아빠와 눈 맞춤이나 말 따라 하기가 잘 되는 시간은 언제인지, 어떤 말 표현을 익혔으면 좋겠는지 등 생각나는 대로 메모해 두었어요.
좋아하는 놀이: 레고블록 중 동물 인형, 자석블록 무너뜨리기
놀이하면서 사용하는 어휘: 동물 인형을 보며 동물 이름 말하기
엄마가 바라는 점: 함께 소꿉놀이했으면 좋겠음
관심 있는 책: 보드 북, 조작북, 사물인지 책 등 글밥이 적은 책, 동물들이 나오는 책, 선이 깔끔한 책을 좋아함, 생활 동화에 관심 없음, 읽어주는 이야기에 관심 적음
눈 맞춤이 잘 되는 시간: 식사 시간
말 따라 하기가 잘 되는 시간: 재우는 시간
우선 표현했으면 하는 말: 주세요, 고마워, 아야 했어.(아파요)
변화는 작은 것부터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지 구상해 보았어요.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한 번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엄마에게도 힘들고 아이에게도 스트레스가 되니까요. 아이를 관찰하며 조금씩 언어 자극을 늘려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우리 아이의 경우 언어 지연 외에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어서 이 부분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엄마의 언어 촉진을 위한 노력은 수용 언어의 수준이 아이 개월 수의 범위 안에 있어야 효과가 있다고 해요. 아이가 아직 이해 수준이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계속 언어 자극을 주려 한다면 아이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수용언어
· 간단한 언어 요구에 반응
· 신체 부위를 식별한다
· 명사 이해가 많아짐(약 50개)
· 간단한 심부름 가능
표현언어
· 목적을 가지고 음성을 사용함
· 성인과 유사한 억양패턴을 보임
· 정확히 사용하는 단어가 생기고 점점 늘어남(3~10개)
· 반향어, 자곤이 생기기도 함
* 18~24개월
수용언어
· 형용사 이해
· 둉요를 즐김
· 2단계의 지시를 수행함
· 알고 있는 어휘 300개 이상
표현언어
· 자곤보다 낱말 사용이 증가함
· 낯선 사람이 알아듣는 정도 약 25~50%
· 어휘폭발기 – 말할 수 있는 어휘 50~100개
* 24~36개월
수용언어
· 이름을 듣고 그림에서 찾을 수 있음
· 물건의 기능을 이해함
· 부정문 이해
· 대부분의 의문사 이해
· 알고있는 어휘 500~900개
표현언어
· 낯선 사람이 알아듣는 정도 약 50~75%
· 두 낱말 조합
· ‘뭐, 어디’를 활용한 의문사로 질문
· 2~3회 정도 차례를 지키며 대화 가능
· 말할 수 있는 어휘 약 250개
* 36~48개월
수용언어
· 시간 개념을 이해
· 크기비교, 상대적인 의미 이해
· ‘만일, 왜냐하면’등의 표현에 의한 관계 이해
· 알고있는 어휘 1,200~2,400개
표현언어
· 세 단어 이상의 문장을 사용
· 문법형태소를 익힘
· 과거의 경험을 말하고 미래를 인식
· 동요를 부름
· 발음상의 실수는 있으나 낯선 사람도 대부분 알아들음
· 말할 수 있는 어휘 800~1,500개
우리 가족의 상황, 아이의 기질, 나의 육아 방식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단어 표현을 늘릴 수 있는 놀이와 전략을 세워보았습니다.
1. 역할 놀이
우리 아이는 혼자 놀이하는 것을 좋아하고 손으로 조작하는 것을 좋아해서 블록 놀이가 잘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성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서 놀이공간에 역할 놀이를 들이게 되었어요. 언어 검사를 해 주신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아기인형과 주방 놀이를 구입하고, 병원 놀이, 가게 놀이 장난감 등을 물려받았어요.
주방 놀이 세트를 들이고, 아이는 장난감을 무척 좋아하며 혼자 이것저것 요리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어요. 음식 만들기는 어린이집에서 많이 하는 놀이였는지 재미있게 즐겼지만, 역할 놀이 장난감을 들였다고 해서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식탁을 차리지는 않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사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고, 혼자 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말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아기인형은 놀이 방법을 보여주니 오히려 질투하는 것처럼 엄마에게서 인형을 떼어놓고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어요.
주방 놀이에 서서 놀이하면 엄마와 마주 보고 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소풍 놀이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친구의 생일파티를 한 날에는 고깔모자를 아기인형에게 씌워주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보고, 침대 위에 작은 놀이 텐트를 펴고 들어가서 같이 캠핑 놀이도 하며 역할 놀이의 재미를 알려주었어요.
소꿉놀이할 때는 아이가 채소, 과일 등에 대한 이해가 적었기 때문에 채소와 과일 이름을 알려주고, 아이가 하는 동작(딸기를 싹둑 잘라, 냄비가 보글보글하네)을 말해주었어요. 말을 유도하기보다는 행동을 말로 연결해주고, 엄마가 놀이하는 동작을 보여주며 아이가 엄마를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2. 짧게 표현하기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 조금 더 의식적으로 짧은 말을 사용하고, 의성어와 의태어도 더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했어요. ‘밥 먹어, 냠냠 먹어.’ ‘신발 신어. 발 쏘옥~ 하자’, ‘(쏟아진 물을) 쓱싹쓱싹 닦자’ 등으로 표현했어요. ~할까? ~했어 보다는 ~어, ~자 로 문장을 마칠 수 있도록 했어요. 아이가 물을 마실 때는 ‘물 먹어’ 옷을 갈아입을 때 는 ‘옷 입어. 티셔츠 입어.’.’깜짝 놀랐어?’ 등 아이의 행동이나 표현을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 주었어요.
3 표현 유도하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주었었는데, 여기서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어요. 평소 냉장고만 두드리며 ‘치즈’라고 하면 치즈를 주었었는데, 이제는 ‘주세요’라는 표현까지 해야 치즈를 주었어요. 처음 아이는 잘 따라 하지 않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차분하게 아이가 표현해야 할 말을 알려주니 ‘주~’ 에서 ‘주세 세요’로, 그리고 ‘주~세요’로, 차츰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표현이 서툴러 짜증을 내도 기다려주었고,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칭찬해 주었어요. 글로 적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니지만 아이의 짜증을 참고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4. 책과 친해지기
아이의 말이 느리다고 하면 흔히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어주면 말이 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죠. 저희 아기는 사물 사진이 있는 단어 배우기 용도의 사물인지 책은 정말 좋아했지만, 이야기가 있는 책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사물 책 중에서도 동물 책만 반복해서 보았고요. 계속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는 일명 ‘추피지옥’이 온 친구들이 부럽더라고요. 엄마는 정말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데,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어 주었어요.
저는 육아를 하며 전집을 사지는 않았고, 물려받은 책으로만 육아했어요. 영아시기의 책은 보드북이어서 훼손되어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글밥이 있는 전집들의 경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은 오염되거나 찢어짐 정도도 심하고 분실된 책도 많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흥미를 보일 만한 책이 많이 없어서 동화전집을 한질 들이게 되었어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동물 전집도 중고로 들였고요.
우리 집은 정말 좁아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취미로 치던 피아노를 처분하고 그 자리에 전면책장과 소꿉놀이를 들였어요. 전면책장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꽂아두고, 수시로 바꾸어주었어요. 그러자 책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가 한 권 두 권 조금씩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이야기를 듣는 것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어줄 때는 책 페이지에 있는 모든 내용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바꾸어서 읽어주었어요. 항상 같은 책만 읽으려고 해서 어떨 때는 내용을 읽지 않고 책 안에 어떤 사물들이 있는지 찾기 놀이를 하기도 했어요.
5. 책을 싫어하는 아이, 단어 카드 활용하기
책에 호기심은 생겼지만, 그래도 동물 책만 보려 하고 이야기 듣기에 흥미가 없는 우리 아이에게는 단어 카드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단어 카드 하면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빠르게 넘어가는 단어 카드의 글자를 또박또박 읽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우리 아이의 경우 항상 한 장씩 단어 카드를 보여주면 전체 뭉치를 가져가서 바닥에 쏟아놓고 동물 카드만 찾았어요. 단어 카드를 차트에 꽂아두면 차트에서 카드를 꺼내는 놀이를 더 좋아했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부글부글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단어 카드를 보여주고 손 닿는 곳에 두었어요.
단어 표현이 늘어나는 시기에 단어 카드의 도움이 꽤 컸어요. 사물 이름을 배울 수 있는 스티커북도 도움이 되었고요.
6. 소통의 시간 갖기
전 의욕은 있지만 에너지는 부족한 엄마예요. 언어발달을 위한 놀이를 머리로 구상해도 실천할 에너지가 모자라더라고요. 꾸준히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요. 그래서 자기 전 시간을 많이 활용했어요.
평소 자발적인 말하기는 좋아해도 따라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자기 전 시간만큼은 다른 자극들이 차단되는 만큼 엄마의 이야기에 많이 귀를 기울여주더라고요. 평소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고 옆에 누워 자는 척을 했는데요, 이 시간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잠자리에 눕는 시간을 조금 당겼어요.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워서 동요를 불러주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많이 들려주며, 따라서 말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아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단어들을 따라서 말할 수 있게 해 주면서 그 사이 엄마가 목표로 하는 단어를 하나 넣어서 같이 말하는 연습을 했어요.
엄마가 목표로 하는 단어는 부정확한 발음의 단어를 조금 더 정확한 발음으로 말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 일상생활을 하며 아이가 사용했으면 하는 단어 등으로 정했고 목표한 단어를 이야기하다가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멈추었어요.
지환이라는 친구 이름을 ‘지아’ 라고 이야기해서 ‘지화~니’ 정도로 말할 수 있도록 유도했고, 아이가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자기 이름과 고마워, 미안해 등의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을 많이 들려주었어요.
아이가 말을 잘 따라 할 때는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녹음된 아이의 말을 그다음 날 저녁에 들려주며 또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단어가 확장되는 시기에는 단어를, 문장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문장을 말할 수 있도록 확장하였고, 지금은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노래 부르기로 하고요있어요.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이야기해 주고 따라서 말해볼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바꾸어 말해주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도 같이 불러보며 가사가 틀리는 부분을 천천히 바르게 불러주어 발음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7. 미디어 노출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무렵, 저는 미디어 노출을 영어 영상만 하고 있었어요. 제한적인 영상만 활용해서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지 않고, 영어도 친해지면 좋겠다는 의도로 영어 영상을 보여주었죠. 그래서 27개월 무렵, 아이가 표현할 수 있었던 약 70개의 단어 중 1/3 이상은 영어단어였어요. 동물, 색깔, 숫자를 영어단어로 이야기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 아이는 영상을 보며 동작이나 말 표현 따라 하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에 보여주던 영상을 한글 영상으로 바꾸었어요. 애니메이션보다는 의성어, 의태어가 많이 나오고 성우들이 분명한 발음으로 이야기 해 주는 KBS키즈 영상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상 노출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되 방향을 바꾸어주고, 영상을 틀어준 후에 엄마의 일을 하기보다는 옆에 같이 앉아서 발음을 같이 따라 하고, 아이가 반응할 때 칭찬해 주며 영상을 함께 보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관심을 두고 함께 노력하였더니 아이의 언어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어요. 아주 조금씩요. 엄마의 관심이 아이의 언어에 집중되니 말 하나하나 늘어나는 것이 큰 의미가 있게 느껴지고,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친구들에 비해 더디게 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가 걸음이 느려서 모든 관심사가 ‘언제 걸을까?’에 있을 땐 잘 걷는 친구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대근육 발달을 위해 매일 마사지도 해 주고, 잡고 서기, 잡고 걷기를 많이 할 수 있게 도와주며 ‘빨리 걸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했는데, 잘 걷게 된 지금은 그때의 고민이 정말 별것 아니었구나. 오히려 늦게 걸어서 편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조급함을 내려놓고 멀리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의 노력이 많지 않아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면 아이는 나아갈 힘을 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