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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23. 2019

길고 길었던 다낭의 밤

새벽 3시까지 공사를 하겠다고?

2019년 7월 26일  바나힐

길고 긴 밤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밤이었다. 어제 콩카페에서 마신 코코넛 커피 때문에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어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11시쯤 됐을 무렵 갑자기 엄청나게 큰 공사 소리가 들린다. 호텔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건축 공사를 하는 소리 같았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밤중에 공사를 할 수가 있지?' 설마 조금 있으면 끝나겠지 싶어서 참고 기다렸는데 12시가 다 되도록 엄청난 소음이 계속 나는 거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프런트에 전화를 했다. 근데 돌아오는 말이 영어가 아니다. 나도 당황해서 한국말이 나왔으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영어로 다시 물어봤다. "밖에 소음이 너무 커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호텔 옆에서 공사를 해서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단다.


'뭐! 어쩔 수가 없어? 공사장 소리 때문에 너네 호텔 고객이 잠을 못 자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게 할 소리니? 이 정도로 소음이 심할걸 알았으면 이 방에 손님을 받지 말았어야지!!! 이게 명색이 4성급 호텔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직원의 대답에 더 화가 났다. 그럼 대체 공사가 몇 시까지냐 물으니 새벽 3시에 끝난단다. '헐~ 밤새도록 공사를 하겠다고? 니들은 대체 뭐 하는 거니~ 그 밤 중에 공사를 허락한 사람은 대체 누구냔 말이니?' 새벽 3시까지 공사를 하는 사람이나  그 공사를 허락해 준 사람이나 모두 다 미친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도 화가 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계속 '정말 말도 안 된다. 미쳤네~'만 반복할 뿐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다들 1층으로 뛰어내려 가 항의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여긴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안 그래도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잠이 안 오는데 소음까지 보태니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새벽 5시! 또 그 소리가 시작됐다. 진짜 미친 거 아니니~~~!!!!

결국 아침까지도 잠 한숨 못 자고 일어나 씻고 일단 밥부터 먹고 로비에 가서 항의를 하기로 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음식도 맛을 못 느끼겠다. 억지로 꾸역꾸역 밥을 먹고 로비에 가서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그럼 방을 바꿔주겠단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화가 덜 날텐데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딱 자기 할 말만 하고 끝! 방을 바꿔주겠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따지고 보면  이 사람 잘못도 아니니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은 많지만 차마 다 하지는 못 한 채 우리의 소심한 항의는 방을 바꾸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오늘은 바나힐 투어를 신청한 날이라 얼른 짐을 싸놓고 호텔 로비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투어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나 기사는 현지인이지만 투어 참가자는 다 한국인들이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고 바나힐에 도착해서는 자유롭게 다니다가 정해진 시간에 다시 버스에 타면 된다. 가끔 이용했던 토토투어랑 비슷한 시스템이다.

바나힐은 1919년 프랑스 식민지 당시에 프랑스인들이 더위를 피해 높은 산에 지은 휴양지 같은 곳이다. 1954년 베트남의 독립선언 후 폐허가 되었다가 1998년부터 휴양지 겸 놀이공원으로 개발된 곳이다. 바나힐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엄청 높고 길이가 길어서 은근히 무섭다. 프랑스식 건물에 식당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있고 판타지 파크라는 실내 놀이 공원이 있다. 판타지 파크는 우리나라 놀이공원에 비하면 아주 유치하고 조잡하기 그지없는데 그마저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말이다.

TV에 나와서 유명해진 슬라이드라도 타고 싶었는데 대기줄이 너무 길어서 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산지대라 덥지 않고 시원하다는 점인데, 그마저도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오늘도 소나기가 두 번이나 내렸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바나힐은 사실 기대보다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곳이다. 생각보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두 번은 안 가봐도 될 것 같다.

원래는 바나힐 투어를 마치고 아시안 파크에 가서 대관람차를 탈 생각이었으나 놀이기구를 안 탈거라 자유이용권을 끊고 대관람차만 타는 건 낭비인 것 같아서 밖에서 보고 사진만 찍기로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롯데마트에 가서 쇼핑할 거리도 찾아보고 마트 안에 있는 한국식당에 가서 비빔밥이랑 냉면을 먹었다. 정통의 맛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맛있었다. 특히 미역국이랑 감자볶음은 한국맛 그대로다. 엄치 척!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니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조금 기다리니 금세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대관람차의 불빛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 너무 예쁜데 카메라는 역시 사람의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그랩을 불러 호텔로 돌아갔다.

방을 바꾸고 다시 짐을 방에 갖다 주던 벨보이가 내일 어디 가냐고 묻는다. 후에에 갈 건데 이미 그랩으로 차를 렌트해 놨다고 말하니 알겠단다. 여전히 와이파이가 잘 안 돼서 로비에 가서 사진을 전송하려고 내려갔더니 그 벨보이가 후에에 얼마를 주고 가기로 했냐고 묻는다. 190만 동에 예약했다고 하니까 너무 비싸다며 자기가 내일 운전해줄 수 있는데 160만 동에 해주겠단다. 근데 이미 수줍음 많은 그랩 아저씨한테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은 터라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더니 벨보이가 취소하는 거 어려운 일 아니라고 계속 바람을 넣는다.

소심한 우린 어떻게 그랩 기사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솔직하게 얘기를 다 했더니 자기도 그 가격에 운전을 해주겠단다. 마음이 급했는지 영어 할 줄 아는 친구를 시켜 전화까지 걸어서 '자기가 후에를 잘 안다. 그리고 난 안전하지 않냐'라며 자기랑 함께 가자고 한다. 가격이 같다면 아무래도 몇 번씩 함께 한 사람이 낫지 않을까 싶어 원래 예약했던 그랩 아저씨랑 30만 동이 싸진 160만 동에 가기로 했다. 돈을 깎아서 좋긴 한데 우릴 호갱으로 본건가? 160에도 갈 수 있는걸 190이나 부르다니... 큰돈은 아니지만 여기 와서는 계속 호갱이 된 기분이다.

3층 식당에서 칼을 빌려다 어제 먹고 남은 망고 6개를 깎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어쩜 그리 달고 맛있는지... 망고만큼은 우리가 호갱이 안 됐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더 달콤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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