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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26. 2019

베트남까지 와서 비명횡사하고 싶지는 않다고요!

베트남의 경주, 후에

2019년 7월 27일  후에

오늘은 그랩 아저씨랑 후에에 가기로 한 날이라 평소보다 서둘렀더니 조식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서 미케 비치에 갔다 왔다. 어제 해질 무렵에 본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다. 아침 7시 반밖에 안 됐는데 수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침 해변 산책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마지막 날은 시타딘 호텔에서 묵기로 했기 때문에 후에에 갔다가 시타딘 호텔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후에는 경주 같은 곳으로 왕궁과 왕릉을 비롯한 문화재가 많다. 우리나라 경주나 서울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는 것처럼 후에에도 아오자이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저께 한시장에서 맞춘 아오자이를 입고 가기로 한거다. 어렸을때 이후로 한복을 입어본 적도 없는데 베트남까지 와서 아오자이를 입게 생겼다.

8시 반에 아저씨(나보다 나이가 어릴듯 싶지만 아저씨는 아저씨)를 만나 후에로 향했다. 이 아저씨와 후에에 가기로 결정하면서 한 가지 맘에 걸렸던 게 영어를 정말 1도 못 한다는 거다. 영어를 못 해서 대부분의 택시기사님들이 말이 없기 때문에 처음엔 베트남 기사님들은 다 무뚝뚝한가? 하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착하고 순수하고 배려심도 많은데 말이 안 통하니 불편하긴 했다. 어제 그 벨보이를 선택했다면 의사소통은 잘 됐겠지만(뭐 벨보이도 영어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두 번의 만남으로 쌓인 정? 때문에 그랩 아저씨를 선택했다.

암튼 구글 지도와 번역기를 통해 꼭 필요한 말만 간신히 소통하며 후에로 향했다. 아저씨가 세심하게도 시원한 생수와 햇볕 가리개를 준비해 주셨다. 세 번째 만남이지만 여전히 수줍어 하신다. 이 아저씨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기사님이 주신 생수병을 보니 갑자기 대만 택시투어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수 뚜껑을 따면서  농담처럼 물에 뭔 짓을 했을지 모르니 내가 먼저 마셔보고 이상이 없으면 그다음에 마시라고 했는데, 외국에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후에 가는 길에 하이반 고개와 랑꼬 비치에 들렀다가 후에에 도착했다. 쓸 말은 많은데 도저히 힘들어서 못 쓰겠다. 그래서 투어 코스만 간단히 써야겠다.

* 후에 왕궁
아저씨가 먼저 후에 왕궁에 내려주셔서 36만 동하는 통합권을 구입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완전 넓고 완전 예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마치 전세 낸 것처럼 왕궁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하늘이 파래서 더 예쁘게 보였다. 우린 돌아다니는 내내 예쁘다를 연발하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 티엔무 사원
후에의 상징적인 사원으로 흐엉 강변에 있어 경치가 좋다. 앞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원을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한국인 아저씨들이 우릴 보고 '월남 아가씨들인 줄 알았는데 한국 아가씨들이네' 하시면 아오자이를 어디서 샀냐고 물으시고 딸내미 하나 사다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온 모녀들도 우리가 입은 아오자이가 예쁘다며 얼마 주고 산거냐 물어서 친절하게 가격이랑 어디서 샀는지 알려줬다. 한시장에서 사기는 좀 당했지만 예쁜 걸로 잘 골랐나 보다.

* 점심
후에에 가면 본 보 후에(후에 쌀국수)를 꼭 먹어보라기에 아저씨한테 얘기했더니 잘 모르는 눈치다. 나름 지인한테 전화도 하고 찾아보더니 식당을 찾아가는데 아저씨가 초행길이라 그런지 갔던 길을 다시 가고 돌아 나오기를 수차례... 한참을 헤매다 어느 식당에 내려줬는데 같이 먹자고 해도 극구 사양하신다. 식당 종업원이 통역을 해줬는데 아저씨는 아까 기다리면서 먹었다고 했다.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딱 봐도 비싼 식당이다. 기사아저씨가 극구 사양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식당 안에는 현지인은 없고 외국인들만 가득하다. 그냥 쌀국수 맛있는 현지 집이면 되는데 아저씨는 우릴 생각해서 예쁘고 비싼 곳으로 데려다줬던거다. 베트남 여행하면서 느낀건데 현지인들은 여행 온 한국사람들은 다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좀 깎아보려고 하면 '한국 돈으론 얼마 안 하잖아.' 하며 잘 안 깎아준다. 뭐 다 상대적인거지만, 우린 결코 부자가 아닌데 말이다. 암튼 채소가 들어간 쌀국수랑 소고기 쌀국수를 시켰는데 나온 걸 보니 둘 다 볶음국수다. 우리가 원하던 게 아니어서 당황했으니 생각보다 완전 맛있었다.

* 카이딘 황제릉
응우옌 왕조의 12대 황제인 카이딘 황제가 묻혀 있는  릉이다. 역시 황제의 릉이라 그런지 규모도 크고 장식도 엄청 화려하다.

* 뜨득 황제릉
응우엔 왕조의 4대 황제인 뜨득 황제가 묻힌 곳으로 뜨득 황제는 무덤이 완성되고도 16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무덤을 별장처럼 여기고 뱃놀이를 즐기거나 시를 짓기도 했단다. 여기도 너무너무 멋졌는데 더운 날씨 탓에 감흥은 처음만 같지 않았다.

* 다낭으로 가는 길
기사 아저씨가 초행길이라 많이 긴장을 한 건지 돌아가는 길에는 너무 피곤해 보여서 안쓰러웠다. 근데 가다가 갑자기 속력이 느려지기도 하고 차선을 자꾸 이탈하고 해서 걱정스러운 맘에 룸미러로 아저씨 얼굴을 계속 확인했는데 눈이 빨갛기는 해도 다행히 졸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정말 큰일이 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토바이까지 다니는, 누가 봐도 국도 같은 고속도로를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정면에 엄청나게 큰 트럭이 다가오는 거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상황판단이 잘 안 되나보다. 몇 초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순간 이 엄청난 사태를 깨달았다. 트럭이 길을 잘못 든 건가? 아니다! 우리가 역주행을 한 거다. 역주행을 깨닫는 순간 앞좌석을 미친듯이 두드리며 아저씨를 다급하게 불렀다. '베트남까지 와서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순 없다고요!!!' 이러다 부딪히는거 아닌가 싶은 순간 우리 차선으로 돌아왔다. 아저씨가 깜빡 졸았나 보다... 정말 너무 놀랐다. 베트남까지 와서 비명횡사할 뻔하다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번역기로 힘들면 쉬어가라고 했으나 끝까지 괜찮단다. 차라리 쉬어가면 좋으련만... 암튼 불안한 우린 아저씨가 졸지 않게 하기 위해 90년대 댄스 모음을 크게 틀어놓고 피곤에 쩔어 나지도 않는 흥을 가까스로 끌어올리며 따라 불렀다. 마음을 졸이며 한참을 더 달려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초행길이라 길을 헤매는 바람에 운전을 너무 오래 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고맙고도 미안했다.

오늘 행복하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후에는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호텔이 너무 멋지고 뷰가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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