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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Jul 27. 2020

천장에서 물이 새면 어때?포르투인데

episode- 2020. 1. 18.  포르투갈 포르투

이 여행기는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아.. 피곤하다. 시착 적응 실패와 어젯밤 늦게까지 우리  문 앞에서 떠드는 아저씨들 때문에 1시 넘어서 잤는데 새벽 3시 30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미치겠다... 그 시간에 일어날 수도 없고... 침대에서 계속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스마트폰만 만지작만지작... 3시간을 그렇게 뒹굴거리다가 의도치 않게 일찍부터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원래 우리 계획은 기차를 타고 브라가라는 곳에 가기로 했었는데 비도 부슬부슬 오고 몸도 피곤하니 남은 이틀 동안 포르투를 천천히 즐겨보자 뭐 이런 컨셉으로 아무 데도 안 가고 포르투에만 있기로 했다. 그래. 원래 여행은 쉬엄쉬엄하는거지.

다 씻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 헐~! 이게 대체 뭔 일이니!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짧은 영어로 '욕실 천장 물이 샌다. 마치 폭포수 같다.(과장을 좀 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올라가서 확인해 보겠다더니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오셨다. 아무리 봐도 그 아주머니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쿨하게 나가셨다. 포르투갈어로 '이따가 수리기사님을 보내줄 테니 기다려라' 대충 뭐 이런 뜻인 것 같았다. 근데 언제 출근할지 모르는 기사님을 계속 기다릴 수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갔다.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전화를 받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밥을 먹으면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프런트에 내려갔더니 위층 욕조에서 물이 넘처서 그런건데 별일은 아니지만 원하면 방을 바꿔주겠다고 한다. 호텔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게 별일이 아니라고? 난 이런 경우를 처음 보는데? 암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우린 갑작스럽게 짐을 싸야 했다. 안 그래도 터져나갈 것 같았던 캐리어가 마구잡이로 구겨 넣듯 짐을 싸려니 닫히질 않는다. 그래서 여분으로 가져온 트래블백에 다신 입지 않을 것 같은 애물단지 보라색 뽀글이를 구겨 넣으니 간신히 캐리어가 닫힌다. 아... 짜증...


그렇게 짐을 싸놓고 호텔을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프랑스에서도 느낀 거지만 유럽 사람들은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잘 안 쓰는 것 같다. 워낙 적게 내리기도 했지만. 오늘내일 포르투 투어를 하기로 하면서 원데이패스를 사서 돌아다닐지 아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다닐지 고민하다가 시티투어 2일권을 사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딜 가려고 버스나 트램 노선 알아보고 타는 것도 귀찮은데, 시티투어는 유명 관광지에 딱딱 내려주고 와이너리 가이드 투어와 크루즈 투어도 포함돼 있는 데다가 2일권이랑 1일권이 몇 유로 차이가 안 난다. 그러니 이틀 동안 포르투를 돌아보기엔 최적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시티투어 티켓을 사러 가는 길에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성당부터 가보기로 했다. 첫날 봤을 때도 뭔가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여행책을 찾아보니 산투 일데폰소 성당이란다. 톨레도의 대주교였던 일데폰소를 위해 지은 성당으로 두 개의 종탑과 파란 아줄레주가 인상적인 성당이다. 뭔가 상 벤투 역의 아줄레주랑 느낌이 비슷하다 했더니 역시 같은 사람이 만든 작품이란다.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시티투어 티켓을 사서 리베르다지 광장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 앞으로 가서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물론 우린 2층에 앉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니 일단 실내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포르투의 명물 포트 와인을 만들어내는 포트 와인 셀러 26곳이 모여있음)에 있는 카렘 와인하우스에 갔다. 좋았던 게 와인하우스 앞에서 보는 전경이 포르투를 이미지 검색했을 때 나오는 딱! 그 모습이다. 그래! 이게 진짜 포르투지~~~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날이 개길 기대 하며 와인하우스에 들어갔다. 30분쯤 기다려 8명 정도의 외국인들과 가이드 투어가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데 처음엔 가이드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초집중해서 들었으나 쉬지도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영어 설명에 금세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다. 결국 10분 만에 듣기 평가를 포기하고 중요한 단어만 듣고 대충 알아듣는척했다. 와인 저장고에 가서 엄청나게 큰 오크통을 보고 포트 와인의 다양한 종류와 차이점에 대해 배우고 화이트 와인과 루비 와인을 시음했다. 포트 와인은 발효과정에 브랜디를 첨가한 술로 첫맛은 달콤한데 끝에 브랜디의 잔향이 아련하게 남는다. 달콤하고 맛있는데 도수는 센 느낌? 양주를 마실 때처럼 브랜디가 퍼지는 느낌이 좋다. 안주만 있으면 여기 앉아서 와인이나 마시면 좋겠다. 암튼 내가 마셔본 와인 중에 제일 맛있었다.

 

잔 밖에 안 마셨지만 낮술이라 그런가 기분이 좋아진다. 그 기분 그대로 밖에 나오니 비가 개고 파란 하늘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늘도 예쁘고 포르투도 예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바로 앞에 있는 플리마켓에서 화가 아저씨가 직접 그렸다는 포르투 전경 마그네틱을 사서 무려 30분이나 기다려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이게 시티투어의 맹점이다. 버스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렐루 서점으로 갔다. 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지 않았지만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쓸 때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유명세를 탔다는데 가보니 뭔가 호그와트랑 분위기가 비슷하긴 했다. 예전에는 안 받았다는데 하도 관광객이 많아서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몇 년 전부터 5유로의 입장료를 받는다. 책을 사면 5유로를 할인해 주긴 하지만 책값도 싸진 않다. 입장료를 받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다. 매표소가 따로 있을 정도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영문판 어린 왕자를 한 권 샀다. 읽을 거라 생각진 않지만 책이 작고 예쁘니 기념 삼아 사볼 만은 하다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렐루 서점 근처 식당에서 친구가 먹고 싶다는 피자랑 파스타를 먹고, 클레리구스 종탑을 지나 카르무 성당으로 갔는데 마침 미사 중이었다. 어떤 여자분이 나와 성가를 부르는데 성당을 울리는 성스러운 노래가 마치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종교와 상관없이 두 손이 모아지고 마음이 경건해졌다.

다음 코스는 포르투 대성당. 구글이 자꾸 좁디좁은 골목으로만 안내한다. 무섭게시리. 가서 보니 우리가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가면서 몇 번이나 지나쳤던 그곳이다. 그땐 그냥 무슨 성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포르투 대성당이었다. 완전 멋지고 전망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내일 또 와야겠다.

호텔에 오니 전망 좋고 넓은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검색을 하다 프란세지냐(포르투갈식 샌드위치로 빵 사이에 두툼한 소고기 패티와 살라미 햄, 소시지를 넣고 치즈를 녹여 올린 뒤 특제 소스를 덮어서 만듦) 로컬 맛집이 바로 호텔 근처란다. 지금이 아니면 못 먹을 것 같아서 가자고 했더니 입 짧은 친구는(이 나라 음식은 맞는 게 없다며, 검증 안 된 음식은 먹지 않겠다는...) 내키지 않는 눈치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크진 않은데 이상하게 이건 또 먹어보고 싶었다. 용감하게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못 미더웠는지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선다. 호텔에서 5분 거리. 갔더니 현지인들로 꽉 차 있다. 프란세지냐와 생맥주를 시켰는데, 상상한 맛은 아니지만 나쁘진 않았고, superbock 맥주는 쓰지 않고 맛있었다.

배가 불러 근처를 돌아보다 아주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제스틱 카페를 발견해서 밖에서 구경하다 어영부영 의도치 않게 들어갔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조앤 롤링이 자주 와서 해리포터를 집필했다는 곳인데 엔틱한 맛은 있으나 테이블이 너무 가깝고 사람이 많아 도떼기시장 같았다. 암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에 동의는 못하겠다. 그래도 일요일인 내일은 문을 열지 않으니 우연히라도 발견해서 와본 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 아침부터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새는 난리를 겪었지만 하루 종일 그 생각은 한 번도 안 났을 만큼 포르투는 아름다웠다. 원래 물은 샐 수도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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