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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Sep 03. 2020

등짝에 한국사람이라고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episode-2020. 1. 25.  스페인 세고비아

이 여행기는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백설공주 성으로 유명한 세고비아에 가는 날이다. 메트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10시 10분 전에 도착했다. 블로그와 여행 책자에는 지하에 Alsa 버스 티켓 파는 곳이 있으니 거기서 사라고 돼 있는데 다른 버스 회사 티켓 오피스는 있는데 Alsa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친 건가 해서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가봤는데 역시나 안 보인다.


다행히 안내소 같은 곳이 있어서 물어보니 아까 갔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버스 회사 티켓 오피스에서 사면된단다. 그때가 10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11시 30분이 제일 빠른 시간이래서 그마저도 없을까봐 바로 티켓을 끊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열심히 읽으며 1시간여를 기다리다 버스를 탔다. 일기예보상으로 흐리고 때때로 비라고 하더니 가는 내내 날이 흐리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맑게 개었다. 우리가 날씨운이 나쁘진 않은가 보다.


일단 디즈니 만화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알카사르부터 가기로 했다. 원래 요새로 쓰이던 곳을 수세기에 걸쳐 증ㆍ개축을 해 지금의 아름다운 성이 되었다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성은 예뻤고, 탑에 올라가서 보는 전망도 너무 멋졌다.

다음은 세고비아 대성당. 이 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세련미와 우아함이 돋보여 대성당 중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다는데 과연 그런 별칭이 붙을 만하다. 그리고 이 곳엔 유모의 실수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의 아들 묘도 있다.

배가 고파 마요르 광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전에 스페인 왔을 때 계속 실패했었던 빠에야를 시켰다. 주문받는 분이랑 의사소통이 잘 안돼서 엉뚱한 게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덜 짜게 해달라고 한 말은 용케 알아들었는지 생각보단 먹을만했다.

마지막으로 수도교. 2만 400개의 화강암 블록으로 건설된 이 수도교는 시내에서 17킬로 정도 떨어진 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오기 위해 축조되었는데 직접 보니 규모도 크고 멋지다. 어떠한 접착제도 없이 화강암만을 쌓아서 만들었다고 하니 더 대단해 보였다.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햄버거랑 한식 빼고는 입에 맞는 게 없다는 친구 덕분에 세 번째로 한식을 먹게 됐다. 중식당도 아닌 한국식당에 가서 말도 안 되게 짜장과 짬뽕을 시켰다. 맛은? 있다! 구글에 보니 짜다는 평이 많아서 덜 짜게 해 달래서 그런가 인천공항에서 먹은 짬뽕밥 보다 더 맛있었다. 성공!


그리고 어제까지도 전혀 못 느꼈었는데, 중국에서 우한 폐렴(이땐 우한 폐렴이라 불렀음)심각해져서 그런지 뭔가 분위기가 좀 달라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마스크 쓴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페인에 확진자가 없었다.) 난 원래 기관지가 약해서 공기만 조금 바뀌어도 잔기침을 좀 하는 편인데, 괜히 의심을 받을까 봐 눈치가 보여서 기침도 못 하겠다. (이 당시엔 중국사람들만 약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도 어디선가 중국말이 들리면 귀가 쫑긋해졌었다.)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바로 껌을 씹거나 물을 마셨다. 이건 뭐 등짝에 한국인이라고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은데, 아까 지하철에서 어떤 할머니가 우릴 살짝 경계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 눈엔 모든 동양인이  다 중국인으로 보일테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여행 막바지에 이런 일이 생기니 처음으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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