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리스본 공항에 가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날이다. 공항까지 픽업해줄 기사님이 6시 20분에 오신다고 해서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놨다. 평소엔 새벽에 잘도 깨다가 이런 날은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잠이 쏟아진다. 알람 소리를 듣고 간신히 일어나 대충 세수랑 양치만 하고 호텔 로비에서 픽업 기사님을 기다렸다. 기사님이 약속 시간 5분 전쯤 오셔서 리스본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제 포르투갈을 떠난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공항 가는 길이 짧게 느껴졌다.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일찍 공항 도착했는데 셀프체크인 기계가 가득하다. 여긴 대부분 셀프체크인을 하나보다. 다른 나라에서 셀프체크인은 처음이라 버벅거리며 체크인을 하는데 이티켓에 이미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데도 좌석을 선택하는 탭이 나온다. 이미 돼 있으니 안 해도 되겠지 싶어서 패스했더니 원래 자리는 날아가고 엉뚱한 자리가 나왔다. 둘러봐도 항공사 카운터도 안 보이고, 결국 우리 둘은 따로 떨어져서 가게 됐다. 게이트 번호가 뜨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게이트 번호가 나오고도 또 1시간이 지연됐다. 기다리는 동안 국적을 알 수 없는 귀여운 아기와 한참을 놀아줬는데, (절대! 긴 시간은 안 되지만 내가 잠깐은 아기를 잘 본다.) 그 아기는 낯가림도 없이 나에게 안겨서 연신 방긋거리며 주변 모두를 미소 짓게 했다.
아기와 작별인사를 하고 좀 더 기다리다가 비행기에 탑승했다. 포르투갈 항공이라 그런지 비행기에 타니까 에그타르트를 준다. 그런데 냉장상태여서 약간 차갑다고 느꼈는데 먹자마자 배가 뒤틀리면서 신호가 왔다. 헐~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제일 안쪽 창가 자리라 나가기도 번거롭고, 게다가 비행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안되니 이륙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좌석벨트 등이 켜지고 착륙 준비를 하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못 참겠다... 잠깐만 정신줄을 놓아도 큰일이 날 상황이었다. 식은땀이 바작바작 난다. '하느님~ 부처님~ 제발 도와주세요.ㅠㅠ' 난 제발 큰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다행히 무사히 착륙했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나오지 않는다. 기다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몸을 배배 꼬며 갈등하는 사이 친구가 나왔다. '화장실!'이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가서 후다닥 급한 불을 껐다. 휴... 살았다.그 짧은 순간 난 천국과 지옥을 한 번에 경험했다. 천국과 지옥은 어쩌면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 정말 한 끗 차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픽업 기사님을 만나 호텔로 갔다. 30분쯤 걸려 호텔에 도착했고, 기사님이 비행기가 1시간이나 지연돼서 너무 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아서 팁을 조금 드렸다. 바로 체크인을 하려고 했는데, 체크인이 2시부터라서 안된단다. 현재 시간 1시 30분. 짐을 맡기고 나가기도 애매해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로비에 앉아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펼쳤는데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에 대한 기사가 떡하니 실려있다. 신기해서 아미인 조카에게 방탄 기사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시간이 다 돼서 체크인을 하고 룸에 가서 조금 쉬다가 바로 앞에 있는 KFC에 갔다. 대학 다닐 때는 자주 갔었지만, 지금은 매장 자체가 별로 없어서 먹을 일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보니 더 반가웠다. 매장에 들어가니 제니의 '솔로' 노래가 나온다. 마드리드 KFC에서 듣는 K-pop이라 더욱 반갑다.
다음 일정은 프라도 미술관. 사실 그림을 잘 모르니 미술관은 별로 관심이 없지만 마드리드까지 와서 프라도 미술관을 안 가자니 좀 마음에 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호텔에서 너무 가까우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가보기로 했는데 역시나 전시관이 너무 넓고 그림도 너무 많다. 그림 무식자인 우리에게 너무 많은 그림들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친구가 힘들어서 못 있겠다고 호텔에 가서 쉬자고 하는 바람에 결국 다 못 보고 일찍 나왔다. 나중에 호텔에 가서 책을 보니 우리가 놓친 그림들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호텔로 가는 길에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커플이 보여서 부러워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둘이 떨어지고 보니 둘 다 수염 달린 남자였다. 나는 살짝 놀랐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역시 프리해.
일단 호텔에 가서 쉬다가 7시 30분쯤 나가서 오징어 튀김이랑 훈제연어 타파스에 생맥주를 마셨다. 뭔가 먹어본 쓴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필스너우르겔이었다. 별로 한 게 없는 오늘이지만 타파스에 맥주를 마시니 스페인에 온 게 실감 나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