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빗소리가 들려 아침까지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일어나 보니 비가 그쳐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날씨 복은 있나 보다. 밤새 물이 얼마나 불었나 궁금해서 아침을 먹자마자 물가로 가봤다. 물이 많이 붇긴 했지만 생각만큼 무섭진 않았다. 물론 물살이 더 세져서 현기증 때문에 다리를 건널 수는 없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겨우 이틀 밤이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쉬었다가게'에서 브라보콘을 먹으며 버스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영주시장 근처 병원에 가신다면서 괜찮으면 태워다 주신단다. 우리야 당연히 괜찮지요! 덜컹거리는 시골버스도 매력적이지만 안락하고 빠른 승용차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영주시장 앞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아저씨께서 알려주신 삼판서고택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긴 한데 문제는 배낭이다... 내가 군대를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완전군장한 무게가 이 정도 아닐까 싶다. 내 체감 무게가 그렇다는 거다. 어제 닭강정이랑 같이 마시다 남은 맥주 무게까지 더해져서 웬만한 사람은 뒤로 넘어가게 생겼다. 암튼 그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국토대장정에 오른 심정으로 삼판서고택에 도착했다. 둑방 옆 강가에 있는데 벚나무길도 예쁘고 하얀 뭉게구름에 바람까지 시원해서 정말 좋았다. 한 번 앉으니 일어나기가 정말 싫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내며 영주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쫄면 맛집 중앙분식을 찾아갔다. 유명하다고는 들었지만 줄까지 서서 먹을 줄은 몰랐는데 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줄이 서 있다. 배낭이 무거워서 서 있기도 힘든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고 30분을 기다려서 드디어 쫄면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 쫄면과는 달리 면발이 오동통했고, 단맛, 매운맛, 신맛의 균형이 잘 맞는 맛있는 쫄면이었다. 다만 쫄면의 하이라이트인 삶은 계란이 없고 따뜻한 국물이 없다는 점은 무척 아쉬웠다. 매콤한 쫄면을 먹으니 어제 랜떡(랜드로버 앞 떡볶이)에서 먹었던 어묵 국물이 생각나서 어찌어찌 랜떡을 찾아가 삶은 계란이랑 어묵을 먹었다. 뜨끈한 어묵 국물을 먹으니 포만감과 함께 아까 먹은 쫄면의 매운맛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명절연휴라 영주시내에 차가 많이 막혀서 일단 영주역에 가서 쉬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영주역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커피숍으로 가서 달콤한 토피넛 라떼를 마시며 기차 시간을 기다린다. 아~ 엄청 피곤하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 여유롭게 힐링을 하고 온 게 분명한데 왜 이리 힘들다니...
이게 다 죽일 놈의 배낭 때문이다~~~ 아... 내 어깨....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낭 무게를 재봤다. 5.5kg! 라니!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체감 무게가 20kg이면 10kg는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