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강물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by 앤 셜리

멀리 남쪽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엉덩이가 들썩거려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매화 피는 곳은 하나같이 왜 그리 멀리 있는건지... 정말 큰맘 먹지 않고는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곳들 뿐이다. 제일 유명한 광양 매화마을은 너무 멀기도 하거니와 기차로 가긴 힘든 곳인데 순매원은 기차역 바로 옆인데다가 낙동강까지 끼고 있어 참으로 매력적인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차 막힐 걱정도 없고 일타쓰리피로 낙동강, 매화, 기차구경까지 할 수 있으니 이만한 매화명당이 어디있나 싶다. 그래! 원동역 순매원! 올해 첫 꽃놀이 장소로 널 간택하였노라!


기차표를 예매하고 손꼽아 기다린 오늘~

그런데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어젯밤 경부선 화물열차 탈선사고 여파로 열차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 그래도 설마 설마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전쟁통이다. 지금 9시 50분이 다 되어 가는데 7시50분 차도 아직 출발을 못 했단다. 9시53분차인 우리 열차는 전광판에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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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지연되는건지 알 수 없으니 포기하고 집에 갈 수도 없고, 바로 출발하겠지 하겠지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넘고 3시간이 다 되어서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도착해야할 시간에 출발이라니... 왜 하필 오늘 이 사단이 난건지. 정말 우리 인생은 한치 앞을 모르는것 같다.


밀려오는 짜증을 나름 추억이라 포장하며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원동역에 도착했다. 내가 상상한 원동역의 모습은 기찻길 왼쪽으론 햇살에 반짝거리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오른쪽에는 하얀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흐드러진 풍경이었으나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건 낙동강도 매화도 아닌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었다.

여기도 난리가 아닌것이다. 작은 간이역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였다. 그러나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3시간 연착으로 2시간여밖에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순매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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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축제기간이 아님에도 먹거리를 파는 곳이 입구부터 줄지어 있었고, 음치임에 분명한 각설이 아줌마의 노랫소리가 순매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사람은 많고 트로트 소리는 시끄럽고, 기차와 매화를 함께 찍을 수 있는 포인트에는 소위 진사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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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게 꽃과 눈맞춤을 할 시간은 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매화는 탐스러웠고 아름답게 빛났다. 그 순간엔 세상 소리를 죽이고 온전히 매화에만 집중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낙동강과 터질듯 탐스러운 매화가 기차와 만나 한폭이 풍경화가 되었다. 저녁무렵 노을이 내려 앉은 순매원은 더욱 아름다웠다.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았지만 매화 자체로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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