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셜리 May 06. 2016

무섬마을에서의 하룻밤

외할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그곳

언젠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스치듯 본 무섬마을 김욱가옥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여긴 무조건 꼭 가야해!!! '라고 마음을 먹었더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도 있고 돈도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같이 여행 갈 사람 찾는 게 쉽지 않다는거다. 다들 여행 취향도 조금씩 다르고 현실적으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가고싶다고 툭 던진 내 말 한마디에 흔쾌히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열흘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D-day! 첫 데이트 하러 가는 사람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대전에서 영주까지는 쉬지 않고 밟아서 꼬박 2시간 반이 걸린다. 맘 먹고 가야할 만큼 멀긴 참 멀다.

원래는 영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무섬마을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쩌다 보니 마을까지 한 번에 와버렸다. 그래서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식당인 골동반집에 가서 골동반(비빔밥)을 먹었다. 기대없이 간 곳인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다. 퇴계 이황선생님께서 즐겨 드셨다던 선비정식도 먹어보고 싶어서 저녁상을 예약하고 나왔다. 여긴 평일 저녁엔 미리 예약한 손님만 받는다고한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김욱가옥으로 고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까봐 기대를 하지말아야지 말아야지하면서 갔는데 집을 보는 순간 완전 감!

내가 그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기자기한 꽃들이 가득한 마당, 정감 넘치는 초가집과 선한 얼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와~~~너무 예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집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아담한 방.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에 우리방 전용 마루, 냉장고, TV, 선풍기, 드라이기, 커피포트, 화투에 직접 만든 윷까지~~~ 정말 깨알같이 없는 게 없다. 할머니께서 물가에 갈때 쓰라고 밀짚모자랑 고무신까지 챙겨주셨다.

검정고무신에 밀짚모자까지 쓰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집집마다 꽃들이 가득한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그리고 무섬마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외나무 다리~

물이 얕아서 다리에서 떨어진대도 안전하지만 은근 무섭다. 발만 보고 걸으니 어질어질하다. 외나무 다리를 두 팔을 벌리고 걷다보니 어린시절 평균대 위를 걷던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기분이 좋았다.

잠깐의 동네 마실로 배가 출출해진 우린 숙소로 돌아 감자전을 부쳐먹기로했다. 이 집 사진을 보고는 꼭 감자전을 부쳐먹고 싶었다던 친구는 감자전 재료와 그릇까지 다 챙겨왔다. 감자를 갈아서 소금만 조금 넣고 감자전을 부쳤다. 설거지니와 빙구는 없어도 딱 삼시세끼 느낌이다.  할머니께 먼저 한 장 부쳐 드리고 좀 전에 들어온 별채 꼬마에게도 한 장 주고 우리도 맥주와 함께 먹었다. 감자밖에 들어간게 없는데 고소한게 완전 맛있다. 배도 부르고 바람도 시원하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둘은 책을 읽는다더니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은 오지만 밤에 잠이 안 올까봐 두 눈 부릅뜨고 꾹 참아본다.

혼자 심심하던 차에 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 넌지시 말을 건네신다.  금세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 동네에 수도교가 생기기 전까진 마을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외나무 다리였단다. 원래 외나무 다리는 가을에 놨다가 늦봄이 되어 물이 많아지면 거둬들이거나 물에 떠내려가는 다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엔 다리가 없어서 물속을 걸어서 밖으로 나가야했다고 한다. 물이 불어나면 헤엄을 쳐서 건너가야했다고. 얼마나 고생스럽고 불편하셨을지...

지금은 세상 좋아진거라고 하신다.


마루에 누워있다보니 또 저녁시간이다. 골동반에 가서 선비정식을 맛있게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이따가 컵라면에 맥주를 마시기로 했으니 빨리 배를 꺼뜨려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으 동네를 한바퀴 돌고 와보니 감사하게도 할머니께서 모기향을 피워두셨다.

일단 씻고 누워서 배가 꺼지길 기다린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다보니 배는 불러도 먹을 수 있겠다 싶다. 바로 지금! 이 컵맥할 시간!

컵라면에 맥주 한 캔~~ "캬~~~ 좋 " 눈이 절로 반달이 된다. 밤새 속이 부대끼고 얼굴은 퉁퉁 붓겠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니 이걸로 충분하다.

컵라면 하나를 가볍게 해치우고 별을 보러 나갔다. 누가 봐도 잠옷인 파자마를 셋이 똑같이 맞춰 입고 밤마실을 나간다. 이 시간에 누가 돌아다니겠어? 했지만 돌아다닌다. 민망함은 잠시뿐~ 우린 당당하다. 낮에 구름이 많아서 안 보일까 싶었는데 별이 제법 많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으나 사진으론 그냥 까맣다. 한밤의 마실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 눕는다. 낮잠을 참았지만 역시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은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오면 어떠랴~ 기분이 이리 좋은걸.


풀벌레 소릴 듣고 있었는데 언제 잠이 든지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나보다.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른 외나무다리 사진을 찍으려 했건만 8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해가 중천이다. 그래도 아침공기는 상쾌하다. 또 다시 동네 한바퀴. 시간이 가는 게 아깝다. 돌아가보니 브런치 준비가 한창이다. 이 시골집에서 브런치라...뭔가 안 어울린다 싶지만 왠지 낭만적이다. 꽃밭을 보며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어제 쓰려다 못 쓴 엽서를 쓴다. 내가 나에게 쓰는 엽서라니 생각만으로도 오글거리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쓸까싶어 용기를 내본다. 이 마을에 있는 느린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보내준다는데 까맣게 잊고 살다 보면 언젠가 받아볼 수 있겠지.

집에 갈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정말 가고싶지 않다. 느린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외나무다리를 다시 한 번 건너본다. 외나무다리, 정겨운 고택들,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이며 담장까지 두 눈에 꼭꼭 담아둔다. 이젠 정말 가야할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집앞까지 마중을 나오신다. 하룻밤 머물렀을 뿐인데도 손주를 보내는 할머니처럼 서운해 하시며 꼭 다시 놀러오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신다. 외할머니댁에서 하룻밤 자고 온것처럼 아쉽고 허전하다. 이 곳 무섬마을이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볼 것 없는 곳이겠지만 나에게는 진정한 힐링이 되어준 천국같은 곳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마저 이름다운 반짝반짝 보석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