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2018.4.28.
재작년 개심사를 코앞에 두고 엄청난 차들로 인해 돌아나와야 했던 뼈아픈 기억으로 작년엔 아침 일찍 출발해 9시쯤 도착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인파와 이미 만차가 된 주차장을 보며 다시 올 곳이 못 된다고 혀를 찼었다. 그때 엄청 투덜거리며 애꿎은 개심사와 극성스런 사람들을 탓했지만 사실 때 맞춰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을 뿐인 개심사는 무슨 죄가 있으며 꽃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서둘러 온 사람들은 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 또한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다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나도 꽃도 몸살을 앓는것 같아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 등을 돌리고 있다가도 며칠 전부터 시시때때로 개심사의 개화상황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꽃 앞에선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약자일 수밖에 없음을... 꽃과의 밀당은 있을 수 없다.
이미 마음은 정해진거나 마찬가지지만 새벽에 일찍 깨면 가고 못 일어나면 안가겠다며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워본다. 그러나 역시 몸은 정신이 지배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알람도 없이 아침잠도 많은 내가 새벽 5시부터 잠이 깼다. 이불속에서 비몽사몽 뒹굴거리다가 5시 30분부터 준비를 하고 6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을 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원래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인지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온통 안개속이다. 한치 앞도 안보인다는 말은 이런때 쓰는 말인가 보다. 스멀스멀 하얀 안개가 내 차를 덮쳐와 앞차도 안 보일 정도가 되니 공포감이 밀려왔다. 초긴장 상태로 비상등을 켠 채 운전대를 꼭 쥐고 운전을 했다. 평소에 1시간 10분 정도면 될 거리가 안개 때문에 속도를 못 내니 1시간 40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8시도 안 된 시간이니 괜찮겠지 했는데 웬걸~ 주차장에 차가 많다. 이 시간에도 이렇게 차가 많다니... 혹시 위에 자리가 있을지 모르니 위험을 무릅쓰고 절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더니 역시나 주차할 곳이 없다. 겨우겨우 한자리를 찾아 꾸역꾸역 주차를 하고 개심사를 한바퀴 둘러본다. 엄청난 대포카메라를 든 사진사분들이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다. 그들 무리 속에 내 손에 쥔 휴대폰 카메라는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지만 꿋꿋하게 셔터 버튼을 눌러댔다. 분홍분홍 몽실몽실한 왕벚꽃은 탄성이 나올만큼 탐스러웠고 절정을 지난듯한 청벚꽃은 다소 지친 모습이었으나 여전히 청초함을 잃지 않았다. 오늘도 개심사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사이,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개심사가 북적북적해지기 시작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안되겠다.
아쉬움을 남긴 채 문수사로 향했다. 다행히 개심사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안개가 낀 왕벚꽃길은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너무 아름다웠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왕벚꽃만 놓고 보자면 개심사보다 문수사 왕벚꽃길이 훨씬 호젓하고 아름답다. 물론 문수사도 이젠 너무 유명해져서 이른 아침이 아니면 진입조차 어려울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