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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Oct 10. 2018

only 수국, only 제주

episode- 2018.6.29.~ 7.1.

누군가는 수국 보러 제주도 간다는 말에 겨우 수국을 보러 제주도까지 가려는거냐며 의아해했지만 나에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일주일 전부터 급하게 비행기표, 호텔, 렌트카까지 예약하고 날마다 제주도 날씨와 개화상황을 검색하며 일주일을 버텨왔는데 결론은 장마와 태풍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걸림돌과 운명처럼 맞딱뜨리게 되었다. 게다가 목요일 저녁때부터 시작된 오한과 고열 그리고 밤새 이어지는 설사와 복통. 아마도 내 생에 39도가 넘는 고열은 어릴 때 이후 처음일거다.  제주도 갈 생각에 오들오들 떨며 병원 가서 주사까지 맞았는데도 나아지는건 없고 증상은 더 심해지고... ㅠㅠ

아픈것보다 제주도를 못 갈까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식구들은 이 비에 그렇게 아픈데 제주도를 어떻게 가냐며 뜯어말렸지만 나를 막을 자가 누구랴.


모두의 걱정 속에 간신히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갔다. 병원에 갈 힘조차 없어 누워있다보니 시간이 4시가 다 됐다. 캐리어를 차에 실어두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친구를 픽업하기 위해 가오동까지 갔다가 간간이 찾아오는 복통에 배를 꼭 움켜쥔 채 청주공항까지 쭈욱 밟았다.

배는 아파도 배는 고프기에 공항에서 순두부찌개를 시키고 먹으려 하니 의욕은 앞서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국물이랑 순두부만 조금 건져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정말 비싸고 맛없는 순두부찌개였다. 지연없이 정시에 출발했으나 생각보다 조금 늦게 제주도에 도착했다. 평소 같았으면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났을텐데 먹은게 없으니 신날 기력조차 없다. 축축처지는 발걸음으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약을 먹었음에도 갑자기 불쑥불쑥 찾아오는 복통때문에 밤새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았다.


토요일 아침. 빗소리 때문에 새벽부터 잠이 깼는데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다. 택시를 타고 렌터카 사무소에 가서 차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수국투어가 시작되었다. 밤새 화장실에 다 쏟아낸터라 배가 고프니 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메뉴는 죽. 제주도까지 와서 죽을 먹을줄은... 그것도 본죽에서~

남은 일정을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요점만 간단히!


* 항몽유적지

죽을 반쯤 먹고 나머지 반은 포장해서 항몽유적지로 향했다. 해바라기와 수국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라 해서 갔는데 해바라기는 아직 덜 피었고 키가 작았다. 수국은 도롯가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조금 지난 감이 있지만 몽글몽글 예뻤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더 좋았다.


* 성이시돌목장, 근처 수국

푸른초원 위에 유유히 뛰노는 말들을 보니 눈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고 우유곽 모양 조형물을 보며 우유는 젖소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남기며 수국을 찾아 나섰다. 이시돌목장 근처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안 알려줘서 투덜대다가 폭풍검색으로 '젊음의 집' 가는 근처라는 팁을 알아내 찾아갔다.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보이는 핑크색, 파란색의 수국들. 온 담벼락을 수국이 빼곡하게 채웠다. 와~ 미치게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쁜꽃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놔뒀을까 싶다. 사진을 찍고 또 찍어도 모자란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다 갈때까지 기다려 우리만의 시간을 맘껏 즐기다 왔다.


* 구억리(안성리) 수국길

제주도 수국여행을 결정하고 검색을 하다가 너~무 예뻐서 꼭 가고자 했던 곳이다. 구억리 김밥집 근처에 주차하고 블로그에서 알려준대로 걸어갔으나 못 찾고 다시 돌아와 가는 길목길목 사진까지 나와있는 블로그의 사진과 비교해가며 어렵게 찾아간 곳. 할아버지께서 심어놓으셨다는데 어쩜 이리 색이 독특하고 예쁜지... 색이 조금 바랬지만 보라색, 붉은색, 파란색의 수국은환상적이었다.


* 수국카페 마노르블랑

하다하다 카페도 수국정원이 있는 곳으로~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원과 자연이 조화를 잘 이뤄놓은 곳. 산방산과 바다가 보이는 멋진 뷰와 수국길이 예뻤다. 그리고 비가 와도 역시 사람은 많다는거.

* 안덕면사무소 수국길

안덕면사무소부터 시작되는 긴~ 수국길이다. 중간 중간 버스정류장까지 가득 핀 수국이 너무나도 예쁜 곳. 수국 정류장이라면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할 것 같다. 장대비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으나 수국길로는 단연 최고!


* 산방산 수국길, 애월해안도로

산방산 아래 도로에 피어있는 수국길. 제주도에서 수국을 만나는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데 제주도민이었던 내 친구는 왜 수국을 한 번도 못 봤을까? 정말 미스테리다. 너~무 수국만 보다 가는것 같아서 숙소로 갈때는 일부러 애월해안도로쪽으로 살짝 돌아갔는데 비때문에 내가 알던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는 볼 수 없었다.


* 보롬왓

일요일 아침, 오락가락하는 비를 뚫고 보롬왓으로 향했다. 일기예보상으론 제주시는 비가 오지만 서귀포쪽은 비가 안 온다기에 부푼 희망을 품고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갔으나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퍼붓는다. 다시 차안으로 일보후퇴했다가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 나왔으나 역시 만만치 않다. 바닥은 비로 질퍽거리고 비바람때문에 머리는 산발이고 일부러 산 투명비닐우산은 제주의 비바람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보롬왓의 끝도 없이 펼쳐진 수국길 앞에서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풀숲을, 게다가 비에 젖어 축축하다 못해 물이 고인 진흙길을 성큼성큼 걷게 만들었다. 비때문에 안개가 낀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의 수국길을, 새소리와 빗소리만 들리는 길을 걷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복의 엔돌핀이 핑그르르 솟아난다. 탄성소리만 입에서 터져나올뿐이다.


제주도는 언제나 옳다! 장대비가 내린다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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