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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Feb 08. 2019

Only 동백, Only 제주 - 2

episode - 2017년 1월 9일

  변함없이 제주도의 길고 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다. 어젯밤에는 화장실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탁!탁!'하는 소리 때문에 더욱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모든 소리에 예민해지는데, 하물며 그 소리의 진원지가 화장실일땐 공포감까지 더해져 잠은 다 잤다고 봐야한다. 어제는 불면의 공포가 현실의 공포를 이기고 소리의 원인을 찾고자 화장실 불을 켜고 5분이나 서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침대에 누우면 다시 이어지는 '탁!탁!' 소리...

"아... 무서워... 귀신의 장난인가?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제발 저 소리 좀 없애주세요... " 아주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하다가 어찌어찌 새벽 무렵에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에 깨서 보니 그 소리는 환풍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귀신이 아니었단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난 왜 본 적도 없는 귀신이 이 나이에도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그리고! 어찌하여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는 나에게 숙면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비몽사몽인 채로 씻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정성스런 조식을 먹고 동백꽃을 보러 길을 나섰다. 근데 날씨가 또 수상하다. 구름도 잔뜩 낀데다 바람까지 분다. 이러면 안 되지. 동백꽃은 햇살 좋은 날 봐야한단말이다...

가는 도중에도 날씨는 구름이 끼었다, 햇살이 비쳤다, 바람이 불었다를 반복하며 참으로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우릴 불안하게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위미리 동백군락지! 여전히 바람은 불고 날씨는 변덕스러웠으나 동백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가끔씩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핫핑크 동백꽃잎이 너무나도 기가 막힌 콜라보를 선보이고 있었다. 우린 홀린듯 동백나무 사이사이를 흥분 아니 광분 상태로 휘젓고 다녔다. 아~ 완전 좋다! 이럴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지! 어떤 사람한테는 5분이면 충분할 곳을 40분이나 있다가 가면서도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는 길에 화덕 피자로 점심을 먹고 카멜리아힐로 향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광풍이... 이건 뭐 태풍 수준이다. 지난 겨울 오키나와의 만좌모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내리자마자 머리는 미친년 산발이 되고 찬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때린다. 허나 이것 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땐 알지 못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어마어마한 사람들...  다들 무슨 회사 사원증 같은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그 수가 엄청났다. 게다가 모두 여자들이라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이건 마치 도떼기 시장이다. 웃고, 떠들고, 길을 막아서며 사진을 찍어대고...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아.. 이건 진짜 아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유리온실의 플라워 카페에서 흡사 메뚜기떼 같은 그녀들이 떠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영귤차를 마시며 그녀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려 카멜리아힐을 다시 천천히 돌아본다. 여전히 바람은 나의 얼굴과 손등을 세차게 때리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지만 동백꽃은 여전히 심장 뛰게 아름다웠다. "산발이면 어떠랴. 이렇게 아름다운데..."라고 말하고 싶지만!  얼굴이 너무 시리다.


  동백꽃을 뒤로 하고 월정리에 있는 숙소까지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어깨는 뻐근하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장시간 밟아대느라 오른쪽 다리가 쥐가 날 지경이었다. 오늘은 운전이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일단 침대에 누워 쉬다가 수요미식회에 나왔던 명진전복돌솥밥을 먹으러 갔다. 갔더니 대기시간이 무려 40분! 연락처 남기고 가면 전화해준단다. 아니 비수기 평일 저녁에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차 안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전복돌솥밥을 맛 보았다. 전복의 싱싱하고 고소한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낸 담백하고 맛있는 밥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일단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누웠다. 오늘밤은 제발 숙면 할 수 있기를...

내일 강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는 불상사가 없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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