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과제의 폐해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by 멍든새

한중 FTA를 기념해 중국의 역사, 문화, 경제에 대해 재밌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한 적 있다. 중국 진출을 꿈꾸는 이들의 사업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정작 나는 죽어갔다. 내가 하는 일은 자료조사부터 대본 구성안 쓰기, VCR 구성안 쓰기, 더빙 대본 쓰기, 자막, 녹화 준비 등이었다. 말 그대로 ‘나 혼자 다하조’ 방송 출연 빼고 다 했다.


다이어트에는 마음고생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영양수액 맞고 약발로 녹화를 했고 아침일찍부터 시작된 녹화가 끝나면 밤새서 자막을 썼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방광염에 피오줌을 싸면서도 자막을 썼다. 아파도 아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회식도 가야 했다. ‘회식이 좋아지면 나이 든 거라는데 아직 젊은가 보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렇게 일해야 했던 이유는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자만했기 때문이다. 보통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는 한 팀으로 구성되며 프로그램이 클 경우 두 팀, 많으면 세 팀까지 움직인다. 메인과 세컨드, 서브, 막내의 4명이 기본이며 팀의 여건에 따라 서브가 추가될 수도 있고 제작비가 적은 프로그램은 서브가 세컨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세컨드 작가가 기획기간 중에 그만두면서 서브였던 내가 세컨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사 프로그램 경력만 있는 3년차 작가를 서브로 충원하고 막내는 경력이 없는 쌩막내를 뽑게 되었다.

방송은 6회로 준비 기간까지 포함해서 2달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후배들에게 잘 알려주고 잘 이끄는 게 내 역할이었다. 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었다. 하지만 할 일과 가르쳐줄 게 너무 많았고 내 능력 밖이었다. 가르치고 봐주며 다시 수정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내가 하는 것이 편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들은 일이 많다고 생각했을 거다. 좋은 후배가 되는 것보다 좋은 선배가 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느꼈다.

열심히 일했지만 욕을 먹었다. 일을 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함께 일했던 PD 중에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 듣게 됐다. 내가 PD들 사이에서 내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상관없었다. 나도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니까.

일만 잘하면 인정받을 거라 생각했다. 6회의 짧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까 건강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 기획료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2~3달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3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한 달에 백만 원 벌자고 개고생한 셈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시급도 안 됐다.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